영적 비타민 바스켓이 있다. 그 바스켓에는 작게 접힌 종이 쪽지들이 비타민 알처럼 수북이 담겨있다. 운동을 끝내고 YMCA를 나서면서 처음에는 그저 “이니 미니 마이니 모” 하면서 위에 있는 쪽지들 중에서 하나를 집었는데 언제부터 인가 손가락으로 휘익 섞어서 내 시선을 잡는 쪽지 하나를 마치 그날의 운수를 잡듯이 선택한다. 그리고 그 쪽지를 펴서 프린트 된 글을 읽으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성경구절이 한줄 혹은 두 줄 프린트 되어 있는 쪽지에는 잘 알려진 구절도 있지만 새롭게 만나는 구절이 많다. 여태껏 한번도 똑 같은 메시지를 받은 적이 없고 매번 다른 메시지를 받아서 흥미롭다. 몇 단어의 연결이 깊은 의미로 다가오면 “어쩌면!” 감탄이 나오고 더러는 내 의식이 주춤해서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영적 비타민을 먹고 지혜를 얻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 내 하루가 밝다. 마치 그날의 축복을 받은 듯 상쾌하다. 사순절이어서 일까? 영적 비타민을 곱씹어 먹으면서 생각을 가다듬으니 어수선한 세상도 아름답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 안에서 즐거워 하여라. 그분께서 네 마음이 청하는 바를 주시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같은 분이십니다.”
오래전 대학시절 친구들과 운수를 보러 간 적이 있다. 강의가 취소된 어느날 한 친구가 심심한데 운수 보러 갈래? 해서 셋이서 소문난 점 집을 찾아갔었다. 서울 변두리의 한적한 주택가에 있던 한 집 문 앞에서 우리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이왕 왔으니 하고 서로 밀고 밀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수정 구슬이 있어서 미래를 볼 수 있으리라는 은근한 욕심이었다. 한 명씩 방안으로 들어가서 마술사인 점쟁이를 만났다. 야릇한 표정으로 방을 나온 친구들 뒤로 마지막으로 내가 방으로 들어갔다. 한 중년의 여인 앞에 작은 상이 놓여 있었다. 약간 묘한 기분으로 그녀와 마주보고 앉았다.
그녀는 내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묻고나서 한동안 나를 찬찬히 쳐다봤다. 조금 불편해서 앉은 자세를 바꾸니 “쯧쯧… 떠돌아 다니겠구먼” 하며 몇 가지 말을 더 붙였는데 그것은 이제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떠돌아 다닐 거라는 말은 돌에 새긴 듯 내 머리에 단단하게 남아 있다. 그땐 왜 미래가 궁금했던 것일까? 우물안 개구리였던 그당시 유신체제로 질식시키는 사회 분위기에서 탈출하고 싶어서 내 미래에서 뭔가 희망을 보고 싶었다. 암튼 어딘가에라도 기대고 싶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과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당장 눈앞의 오늘을 허술하게 취급하지 않았나 싶다. 미국 와서는 타로 카드에는 관심 없어도 중식당에서 받는 재밌는 포춘쿠키의 글에는 가볍게 웃곤 한다.
예전에 일본여행 중 도쿄의 한 사찰에서다. 돈을 넣고 운수가 적힌 쪽지를 뽑는 것인데 첫번째 쪽지에는 그저 그런 운수가 나와서 나는 그 앞에 서서 계속 돈을 넣으면서 좋은 운수가 나올 때까지 쪽지를 뽑았었다. 옆에 선 남편과 일본친구가 그만하라고 말려도 참 미련하게 버텼다. 손에 든 많은 쪽지들이 하나도 그럴듯하지 않다고 불평했더니 일본 친구가 첫번째 것이 옳고 나머지는 모두 들러리라 해서 싱겁게 웃고 끝냈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정답이었다. 좋고 나쁜 것은 관념에 따른다. 너무 좋거나 너무 나쁜 것보다 운수가 그저 물에 물 탄 듯 평범하다면 하얀 백지를 받은 것이다. 그것은 개인이 맘대로 운명을 그려낼 수 있다는 자유를 준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하느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을 가진 후부터 사주팔자가 궁금하지 않았고 수정구슬도 관심을 끌지 않는다. 내일의 운명을 예측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없어지니 그저 평범한 하루를 무사히 잘 지내는 것이 축복이라 감사한다. 그리고 내 삶에 일어났고 또 일어나는 모든 일에 감사한다. 매일 비타민을 꼬박꼬박 잊지 않고 먹듯이 나는 오늘도 영적 비타민을 먹으면서 다가오는 부활절을 기다린다. 희망의 빛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