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14)
소리에도 색깔이 있다고 한다. 소리와 빛은 파동이 있어 소리를 빛의 파동으로 변환하여 시각화하면 소리의 색깔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빛의 스펙트럼을 이용하여 보여주는 소리의 색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소리를 들으며 그려보는 색이 진짜 소리 색이 아닐까 한다. 흐르는 물소리는 파랑색, 연인의 속삭임은 분홍색, 아기가 까르르 웃는 소리는 밝은 노란색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슬픔은 어두운 회색이나 푸른색, 하얀색… 아마도 사람마다 떠오르는 색이 다를 것이다. 슬픔에는 다양한 슬픔이 있고 그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도 모두 다를 테니까.
믿고 듣는 가수의 노래처럼 믿고 보는 그림책 작가도 있다. 데이비드 스몰의 그림책들이다. 화가 데이비드 스몰은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어 많은 인기를 얻은 〈도서관〉과 〈리디아의 정원〉에 그림을 그렸으며, 이 책들을 쓴 작가 사라 스튜어트와 부부이다. 데이비드 스몰의 그림책들은 함께 읽을 자녀가 없더라도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려 한번 찾아보기를 권하고 싶다. 아마 글을 읽지 않고 그림만 보고도 잔잔한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lsie’s Bird〉 이 책은 시인이자 극작가인 제인 욜런이 쓴 글에 데이비드 스몰이 그림을 그렸다. 대도시와 대자연의 소리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과 엄마를 잃고 혼자된 소녀의 감성이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져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그림책이다.
보스톤 시내에 살고 있는 엘시는 도시의 다양한 소리들을 사랑한다. 항구의 갈매기 소리, 상인들이 장사하는 소리, 아이들의 놀이소리… 이런 익숙한 소리에서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위로받는다. 하지만 엘시의 아빠는 외로움과 슬픔으로 힘들어하다 여덟 살 된 엘시를 데리고 머나먼 네브래스카의 초원지대로 이사를 한다. 그 곳은 오직 끝없이 펼쳐진 초원만 존재하는 곳이다. 고요와 고독만이 감돌 뿐, 이웃도 하나 없는 곳에서 엘시는 집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다. 그나마 엘시를 위로해 주는 것은 보스톤에서 새장에 넣어 데려온 노란 카나리아 티미 뿐이다.
그러나 갑자기 떠나버린 엄마처럼 유일한 친구였던 티미가 날아가 버린다. 아빠가 옥수수종자를 사기 위해 멀리 떨어진 도시로 가신 날, 엘시가 모르고 열어둔 새장에서 나온 티미가 집밖으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집안에서만 지내던 엘시는 티미를 찾아 풀숲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한참을 헤매다 주저앉아 울먹이며 노래를 부를 때, 그 곳에서 듣게 되는 소리들. 풀을 스치는 바람소리, 두루미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 하늘 높이 솟아오른 종달새 소리, 그리고 엘시의 노래에 대답하는 티미의 노래…
티미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엘시를 기다리는 것은 커다란 개 한 마리와 닭 다섯 마리다. 아빠가 시장에서 엄마가 만들었던 퀼트와 바꾸어 데려온 새 가족들이다. 이제 엘시는 대초원과 새 가족들이 들려주는 시끌벅적한 소리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환경으로 이사를 선택한 아버지를 따라 떠나는 엘시의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나마 위로를 주던 익숙한 소리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헤어진 낯선 환경에서 슬픔을 견딜 수 있을까 염려되었다. 적막한 초원의 작은집에서 엘시가 밤에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곤 작은 침대에서 흐느끼는 자신의 울음소리 뿐이라는 곳에서.
집안에서만 지내는 엘시에게 집밖의 소리들은 모두 두려움이다. 나가 맞서기에는 너무 큰 두려움이기에 스스로 집에 갇힌다. 마치 엄마를 잃은 깊은 슬픔에서 빠져나오기를 거부하는 몸짓 같다. 유일한 친구인 카나리아를 따라 집밖으로 나간 엘시를 자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안아준다. 풀밭을 쓰다듬던 바람이, 하늘에다 이야기를 수놓던 기러기들이, 가만가만히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혼자 울던 엘시가 문득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았을 때 자연의 소리가 위로의 말들을 쏟아내었다. 자연은 마음을 치료하는 의사이다.
자연이 들려주는 위로가 듣고 싶다면, 마음을 열고 자연에 가만히 귀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