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워싱턴DC에서 열린 벚꽃 축제 퍼레이드는 따스한 햇빛과 꽃 빛으로 눈이 부셨다. 도로 양변을 꽉 채운 관람자들의 흥분속에 축제 분위기는 화끈했다. 화사한 색 분홍이 주를 이루고 줄줄이 이어지던 다양한 팀의 묘기와 멋진 행진을 보면서 정의로움은 무엇일까? 옳고 그르다는 판단은 어떤 질서에 따른 것일까? 라는 의문이 생기니 지나간 세월은 푸른 하늘에 흩어진 구름 같이 가볍게 사라진 것 같았다.
벚꽃 모티브의 온갖 장식을 달고 퍼레이드에 참여한 팀들은 워싱턴DC 만이 아니라 전국 여러 주에서 와서 하나같이 미국사회 깊숙이 자리잡은 일본의 영향이 얼마나 엄청난 지 보여줬다. 이 거리축제에 일본 대사관과 항공사에 도쿄에 있는 타마가와 대학팀까지 거대한 벚꽃 풍선을 앞세우고 일본의 막강한 파워를 과시했다. 앨라배마에서도 6 팀이 참여했고 많은 미국 고등학교 마칭밴드의 드럼마다 붙은 핑크 벚꽃 문장이 내 시선을 잡았다. 워싱턴DC 다운타운 여러 곳에서 열린 일본문화 공연과 전시회에서 환상적인 기쁨을 즐기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가볍게 즐기는 관람자였다.
일본과 미국의 돈독한 관계가 벚꽃 축제를 통해서 해마다 더욱 결속됨을 보면서 세상에 있는 195 나라 중에서 특별히 일본의 모든 것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을 이해했다. 한국인은 일제 36년 조상들이 받았던 억압을 대대로 물려 받아서 마치 나의 것인 양 아직도 일본을 다정한 이웃으로 보지 않지만 미국인들은 다르다. 과거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은 분명히 알지만 그들 후대 사람들 에게까지 불만을 품지 않는다.
세계 2차 대전이 유럽에서 발발했어도 선뜻 가담하지 않던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2403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즉각 대응했다. 태평양과 아시아에서 일본군과 싸웠고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서 수많은 희생자를 낸 후에 마침내 일본의 항복을 받았다. 미국과 일본. 서로 상처를 준 어제의 적 두 나라 사람들은 세월이 흐르니 과거의 교훈은 간직하고 변하는 상황에 적응하며 오늘의 친구가 됐다. 신기하게도 이제는 절친하다.
다음날 일본에서 온 반가운 지인을 만났다. 사실 1994년부터 우리는 몽고메리에 있는 멕스웰 공군부대에 있는 공군참모대학에 일년 씩 교육받으러 오는 일본 공군대령과 소령을 스폰서했다. 처음에는 친구였다가 아들로 바뀌더니 이제는 손자뻘로 해마다 도착하는 젊은 군인 그의 모국 사람들에게 남편은 각별한 정을 준다. 교육을 마치고 돌아간 그들은 일본공군의 지도자들이다. 이번에 방문한 지인도 오래전 그가 소령이었을 적에 인연을 맺었다. 그가 이제 사성장군이 되었고 일본공군의 수장인 공군참모총장으로 미국에 출장왔다.
딸과 사위가 그와 그의 보좌관인 역시 6년 전에 스폰서했던 대령을 The Army and Navy Club의 브런치에 초대해서 모처럼 만에 반가운 해후를 했다. 백악관에서 2 블럭 거리에 있는 이 5성 플래티넘 클럽은 1885년에 The United Service Club으로 설립되었다가 1891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전통과 동지애를 중시하는 이 클럽을 여러 번 찾아서 중후한 내부 시설에 과거 역사를 증언하는 특별한 소장품을 통해서 미 국방력의 흔적을 봤었다. 그 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은 미군에 대한 책자 2만여권을 소유한 도서관이다.
특히 2차대전에 관한 많은 기록과 사진들이 전시된 곳을 큰사위는 휙 지나가며 손님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배려했다. 솔직히 군인만큼 애국심을 강하게 표출하는 직업이 어디 있나. 하지만 역사의식을 분명히 가진 손님들은 느꼈을 것이다. 예전에 우리가 일본 여행중에 일본 국방부인 이찌가야를 방문해서 친숙한 많은 군인들을 만났고 그리고 2차대전을 주도했던 일본군 지도자들의 필체를 모아낸 책자를 선물받았다. 책 커버의 하얀 침묵이 나에게 충격을 줬었다.
우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가족들의 근황을 나누고 각자 전화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줬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당당한 성인으로 제 삶을 사는 스토리는 마치 동화속의 이야기로 재미있었다. 우습지만 우리 부부가 살면서 일군 인연들이 자식들에게 이어지고 그리고 동석한 손주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잘 살아왔다는 감사함을 가졌다. 정으로 사귄 손님들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지며 내 삶에 한국과 미국 외에 일본도 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