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치 전문가이자T 번스 스포츠그룹 대표인 테렌스 번스의 중앙일보 인터뷰 기사가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 화제다. 윤석열 대통령의 미의회 연설에 관한 촌평이다.
“홈런을 쳤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perfect).”
번스 대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에서 스피치 컨설팅을 해준 인연이 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부터 김연아 선수까지, 그의 족집게 과외를 받고 IOC위원들 설득에 나섰다. 덕분에 라이벌이었던 독일 뮌헨을 제치고 개최권을 따냈다.
번스는 윤대통령이 ‘로 앤 오더(Law & Order)’와 같은 현지인들에게 친숙한 미국 드라마와, 한국전쟁 참전 용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한 것이 훌륭했다고 말한다.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감정이 풍부하게 녹아 있었다는 것을 최고로 꼽았다. 그 역시 미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연설을 들으며 가슴이 뜨거워지고 자부심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한 언론학 교수도 영어가 유창하고, 자연스러웠으며, 청중과의 아이 콘택트(eye contact)와 호흡(interaction) 등도 좋았다고 칭찬했다. 굳이 점수로 따지자면 93/100. 역대 한국 대통령 가운데 최고의 연설이었다고 평가했다.
굳이 전문가들을 등장시키지 않더라도 윤대통령의 방미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가릴 것이 없이 워싱턴 정가의 관심을 끌었다.
미국 정계의 한 관계자는 “유럽 주요국의 수장들이 와도, 이처럼 양당이 모두 관심을 갖고 모니터링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이는 미국이 한국을 새시대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미국측도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세계 각국에게 보여주고, 또 말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는 함의이다. 아마도 동맹국 상호간에 윈-윈하는 방법을 알리고 싶어했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두나라 정상들은 북한의 위협에 함께 대처한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표명한 한편, 최첨단기술인 우주분야에서도 과감하게 동맹관계로 승화시켰다.
현대 정치는 흔히들 이미지 정치라고 한다. 정책이나 후보의 강점을 알리기보다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정치라는 뜻이다.
이미지 정치가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각인된 사례로는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온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와 리처드 닉슨 공화당 후보의 사상 첫 TV 토론회였다.
젊고 건강한 이미지를 내세운 케네디는 차분한 논리와 경륜의 닉슨을 압도했다.
사회가 다원화할수록 정책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그렇다 보니 유권자는 개별 정책을 꼼꼼히 분석하기보다 이미지로 정치인을 판단하는 사례가 흔하다. 이에 따라 이미지 정치는 날이 갈수록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무대위에서 완벽에 가까운 연기를 했다. 백악관 만찬에서 윤대통령이 부른 ‘아메리칸 파이’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한 음악가는 “선곡이 뛰어났다”며, “만일 미국 대통령이 1970년대 유행했던 나훈아씨의 노래를 부른다면 반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인들의 마음의 문을 것은 당연하다.
두나라가 가치동맹을 선언한 이상 앞으로 큰 상황변화가 없는 한 모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현 판세를 두고 분석한다면 미국은 실리를, 한국은 명분을 더 얻은 감이 있다. 하지만 한국도 충분히 집을 만들 수 있는 포석을 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는 곧바로 가시화하고 있다. 영 김 하원의원(인도·태평양소위원회 위원장)은 한미의원외교를 활성화하겠다고 나섰다.
한국 국회가 중국과 일본과는 의원외교를 하고 있으나 미국과는 아직이다. 따라서 한국 국회의원이 미국 연방의원들은 고사하고, 보좌관과의 교류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과 미국은 일단 군사동맹과 경제동맹의 시기를 지나 포괄적 동맹으로 나가기 위한 물꼬는 잘 텄다.
앞으로가 문제다. 정상회담 한 번으로 배부를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농부가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준비하고, 때맞춰 비료와 물을 줘야 한다. 농약도 적절하게 뿌려야 병충해가 예방된다.
우리 모두의 관심과, 시간, 그리고 투자가 더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