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가족 3명 등 하나하나 이름부르며 애도…”편히 쉬길” 메모·꽃 가득<
10일 오후 7시 텍사스주 댈러스 외곽 ‘앨런 프리미엄 아웃렛’ 정문 앞에 수백개의 촛불이 밝혀졌다.
나흘 전 이곳에서 총격에 숨진 한인교포 가족 3명을 포함해 희생자 8명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하나씩 손에 든 촛불이었다.
오후 내내 비가 오락가락하고 바람도 많이 부는 궂은 날씨였지만, 추모 행사를 앞두고 1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7시에는 집결 인원이 30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이 추모제는 몇몇 주민들을 주축으로 추진돼 온라인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불특정한 다수가 자발적으로 모인 행사였다.
이번 행사 준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로베르토 마르케스(61)는 “사건 직후부터 주민들이 이곳에 자발적으로 찾아와 추모비와 십자가, 꽃을 놓는 등 희생자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함께 만들었다”며 “오늘 행사는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주민들이 모두 모여 슬픔을 나누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을 고민하자는 뜻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당신의 이름을 말한다'(We speak your name)는 이름이 붙여진 추모제에서 참석자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소리 내 부르며 고인들을 애도했다.
한인교포 조모(37) 씨 부부와 3세 아이의 이름이 처음으로 호명됐는데, 특히 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는 많은 사람이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꼈다.
‘총기난사’ 텍사스 쇼핑몰 앞에서 희생자 추모하는 사람들
참가자들은 희생자 각각의 이름을 부른 뒤 몇 분간 묵념하면서 안타까운 참변으로 생을 마감한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희생자 8명 모두 30대 이하의 젊은 나이여서 진행자가 각각의 나이를 말할 때마다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모두의 이름을 부른 뒤에는 찬송가인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합창한 뒤 옆에 있는 사람들을 포옹하며 위로하는 시간도 가졌다.
희생자들의 거주지가 모두 이 쇼핑몰에서 다소 떨어진 지역이어서 이날 모인 주민들은 대부분 희생자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했지만, 이들은 안전하다고 느꼈던 일상이 이번 사건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고 호소했다.
이날 오후 일찍부터 이곳을 찾아 추모비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제일라 베르기아스(24)는 “이 아웃렛 건너편에 살아서 여기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그날도 사건이 터지기 직전에 이 앞에 있는 매장에 갔었다”며 “집에 들어오자마자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무슨 일인가 했는데, 뉴스를 보고는 내가 조금만 더 늦었어도 죽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범인이 인종주의자였다고 하니 유색인종인 나도 언제든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무서웠다”며 “그날부터 트라우마가 생겨서 너무 힘들었는데, 여기에 와서 함께 추모비를 세우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래도 세상엔 이렇게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생각에 위안받는다”고 했다.
‘총기난사’ 텍사스 쇼핑몰 앞에 놓인 희생자 추모비
이날 추모행사를 진행한 지역사회 리더 셰릴 잭슨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지 않고 쇼핑몰과 식당, 학교에 갈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서 우리가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악하면서 총을 소유한 사람들이 있고, 우리가 그것을 막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이 문제가 단지 정신건강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또 “3∼4분 사이에 8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범인을 사살한) 경찰관이 거기 없었다면 희생자가 수백 명이었을 수 있다”며 “우리의 정치인들을 움직여야 하고, 그들에게 충분히 말해 우리의 미래를 보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니키’라는 이름의 7세 소녀는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며 울먹였다.
8명의 희생자를 기리며 각각의 이름을 써서 세운 십자가 형태의 추모비에는 평안을 기원한다는 뜻의 “레스트 인 피스(Rest in Peace; R.I.P)” 등 고인들의 명복을 비는 손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작은 성조기가 하나씩 꽂혀 있었고, 꽃과 인형도 한 아름씩 놓여 있었다. 3세 아이의 추모비에는 아이가 좋아했다는 코끼리 인형 여러 개와 큰 곰 인형, 뜯지도 않은 새 자동차 장난감이 가득 놓여 있었다.
‘총기난사’ 텍사스 쇼핑몰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들
경찰은 아웃렛 매장 쪽으로 들어가는 모든 진입로의 게이트를 막은 채 삼엄한 경비 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이날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또다시 안전 문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행사 시작 후에는 주변에 경찰차 여러 대로 벽을 세워 다른 차량의 진입을 막았다.
아웃렛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주변에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깨끗한 고층 빌딩과 고급스러운 타운하우스 주택 단지가 즐비해 한눈에도 살기 좋아 보이는 동네라는 인상을 줬다.
이곳은 근래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살기 시작해 ‘뉴 한인타운’으로도 불리는 댈러스 북쪽 도시 캐럴튼에서 차로 10∼20분이면 닿는 가까운 거리여서 교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알려졌다.
현지 주민들은 입을 모아 “이번 사건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도시 앨런은 매우 안전하고 살기 좋은 곳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 6일 오후 3시 36분께 앨런 프리미엄 아웃렛에 찾아와 무차별 총격을 가한 마우리시오 가르시아(33)는 약 4분 만에 현장에 있던 경찰의 총에 맞아 사살됐다. 가르시아는 이날 총기 8정을 가져와 3정은 몸에 소지하고 5정은 차 안에 둔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범행 동기를 아직 밝히지 못했지만, 가르시아가 강한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신(新)나치즘을 신념으로 드러냈다고 밝혔다.
‘총기난사’ 텍사스 쇼핑몰 앞에서 슬퍼하는 사람들
취재, 사진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