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독서클럽이 2023년 4월 25일 수요일 2-4시에 둘루스 도서관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참가해도 된다는 허락을 전화통화로 받고 아내와 참가했다. 모임의 주제는 노벨수상작가 존 스타인백의 ‘분노의 포도’였다. 모두 14분들이 참가했는데, 아는 분은 한 분 외에는 전부 초면이었다. 독서클럽은 2022년 3월에출발되었고 책 읽기를 통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이라고 했다.
독서를 좋아하는 분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아는 분에게 독서클럽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 새로 출판되는 좋은 책들도 알고, 각자가 좋아하는 책들도 소개받으며, 읽은 것을 토론하고 친교도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루스 공원 안내책자에 미국 사람들 독서 클럽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니 여자들만의 클럽이었다. 한인들 여자들만의 독서 클럽도 있는 것을 알았다. 한인 독서클럽을 찾아갔을 때, 이미 그런 클럽이 있어 다행이라 생각이 되었다.
도서관 회의장에는 테이블이 ㅁ 모양으로 배치되고 14명이 둘러앉아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김회장이 “분노의 포도에 비추어지는 자연주의 자들의 주장”이라는 주제로 발표가 있었다.
회장님의 요점은 자연주의자들은 인간은 유전과 환경에 의해 인간 행동들이 결정된다고 믿으며, 사회적 경제적 조건들이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 했다.
소설속의 주인공 톰-조드 가족은 빈곤한 오크라호마의 모래폭풍속에서 농작물을 포함한 모든 걸 잃고, 일거리가 많다는 캘리포니아로 대장정의길을 비참하게 가서, 농장의 일거리를 찾지만, 미국 각지에서 몰려온 많은 일꾼들이 일을 찾는 경쟁속에, 트랙터가 나타나 몇 백명의 일손을 한 대가 다 해치우는 바람에 일거리는 더 찾기 어렵고, 농장 주인들은 농산물의 판로가 없어 태우거나 땅에 묻는 상태 속에서 생존하는 이야기다.
분노의 포도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을 분석한 작품이며 가난에 쪼들려 기아의 상태에서도 인간의 존엄성만은 놓지 않으려는, 그리고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하나일 때 거룩하다는 진리를 말해 준다 고 김회장은 결론을 내렸다.
스타인 백이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번역을 한 분이 읽었는데, 끝 구절이 유난히 귀에 남았다: “신이 가진 권능때문에 우리가 기도했던 책임과 지혜를 이제는 우리 인간안에서 찾아야만 합니다. 인간 자신이 우리의 위험인 동시에 유일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정기적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는 스타인 백이 1962년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신에게 의존했던 책임과 지혜를 이제는 우리 인각안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다니, 그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노의 포도 소설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맹점을 신랄하게 파헤쳤다고, 그래서 작가는 공산 주의자라고 하는 의견도 나왔다.
분노의 포도 소설을 오래전에 나도 읽었지만, 줄거리를 잊었다. 그 소설의 배경과 줄거리를 다시 찾아 읽어 보니,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1차 세계대전 후에 나라들 간의 경제활동의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하고, 미국의 대 공황이 시작되는 배경 속에서, 사람의 노동력에 의존하던 농업이 기계로 대신하기 시작하여, 한대의 트랙터가 몇 백명 농민의 일손을 대신하는 혁신이 일어나는 역사적인 변곡점의 변하는 환경속에서 미국의 한 농가가 어렵게 살아간 이야기이다.
루스밸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3R: reform, Relieve, recovery) 이 나온 것도 그런 배경속이다. 국가적인 차원의정책으로 도로와 수력 땜들 만들어 일자리를 마련하고, 국민을 먹이고 국민 연금을 만들고, 생산과 소비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정하게 만들었다. 그런 정책을 통해서 오늘날의 미국으로 성장했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방의 난방은 난로, 굴뚝이 방 밖으로 난 난로를 사용했지. 지금처럼 냉방 온방 시설은 최근에 생긴 거야.” 내가 미국 유학을 왔을 때 주임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오늘 날의 한국 생활 수준과 70년 전의 그것이 완전히 다른 것은, 물론 미국이 앞섰지만, 미국도 비슷하다.
모임이 끝나고 김회장님의 초청으로 음식점에 가서 잡담을 나눌 때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나이 많은 분이, 피난을 못 가 인민군이 오면 학교에 모여 ‘장백산 줄기줄기 피 어린 자국”을 부르고, 국군이 오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불러야 했다고 말 할 때, 나도 그분을 따라 “장백산 줄기줄기 피 어린 자국”을 같이 불렀다. 초등학생이었던 그때의 기억, 깊이 잊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시간 속에 잊혀가는 마음 고향 친구를 타향에서 만난 반가움을 느꼈다. 김회장님이 쓰신 책 〈Jesus meets Buddha〉를 주셔서, 능숙한 영어문장력과 종교적인 내용의 깊이에 감동하면서 잘 읽고 있다.
독서클럽 다음 모임엔 스타인백의 “찰리와 함께 한 여행”이다. 영어 소설을 읽으면서 영어도 잊지 않게 고전을 다시 읽어 작가가 본 60년데의 미국과 2023년데의 미국을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