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10월 14일 미국은 쿠바 상공 정찰을 통해 소련 미사일 기지를 찾아냈다. 이른바 ‘쿠바 미사일 위기’의 발단이다.
이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시대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였다. 미국과 소련 모두에게 엄청난 긴장의 연속이었다.
다행히 위기는 단기간에 끝났지만, 하마터면 세계를 3차 대전으로 확대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열전은 아니라도 세계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는 위기감이 다시 지구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진앙지는 워싱턴이다. 세계 1위 경제대국 미국이 국가부도(Default·채무불이행)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연방정부의 채무는 이미 지난 1월 부채한도 31조38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최근 예상보다 빠른 오는 6월 1일부터 디폴트에 빠질 수 있다는 적색경고를 했다. 세수의 부족이 원인이다.
연방정부가 국채를 발행해 빚을 늘릴 수 있는 상한선은 연방의회가 법률로 정한다. 그동안 정부가 한도를 늘려 달라고 요청하면 의회가 법을 고쳐 증액해주는 일이 반복돼 왔다.
그러다 보니 상한선 확대는 어쩌면 ‘짜고 치는’ 요식행위로 전락한 느낌이다.
이런 가운데 연방정부는 코로나 팬데믹 기간동안 재정지출을 크게 늘리면서 100%대였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지금은 120%대로 치솟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팬데믹 여파로 공급망이 붕괴되고, 임금이 급속히 오르자 물가는 4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급등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수습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해 급격히 긴축으로 돌아섰고, 이젠 경기 침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상황이 바뀌었다.
부채 증가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돈 풀기’ 선심성 정치의 결과이다.
공화당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하원 다수당이 되자, 조 바이든 정부의 과도한 씀씀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연방정부와 의회는 이전에도 부채한도를 놓고 맞선 적이 있지만 이번 갈등은 특히 심각하다.
물론 백악관과 공화당은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두 진영간 입장차가 워낙 커 치킨 게임(Chicken’s race)은 막판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최근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이 부채한도 증액을 둘러싸고 담판을 벌였으나 무위로 돌아갔다.
공화당은 지난달 국가 부채 한도를 1년간 1조5천억 달러를 올려주는 대신 대규모 정부 지출 삭감을 요구하는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정부를 압박했다.
반면, 백악관은 디폴트 차단을 위해 부채한도를 조건 없이 증액해야 한다는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 예산을 줄이려면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복지 정책부터 대학생 학자금 대출 탕감 같은 공약도 물거품이 되거나 다시 손질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두 진영의 강 대 강 구도의 속내는 무엇일까? 내년 대선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샅바 싸움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양당 모두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가 발생하는 것은 원치 않고 있다.
협상 실패에 따른 디폴트가 발생할 경우 경제는 물론 정치적으로도 심각한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막판에는 어떤 식으로 든 타협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국 국가 디폴트만큼은 피하겠지만 미국경제신용도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 미국의 국가 부도 위기는 곧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에 큰 혼란과 심각한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번 치킨 게임의 승자는 과연 누구일까?
패자는 미국과 미국민이 분명한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