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계절엔 먹고 마시는 것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기생충·바이러스·세균 등 해로운 물질이 빨리 증식해 소화기에 크고 작은 감염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주방 관리는 식품 안전의 핵심이다. 다양한 조리 도구를 이용해 요리하고 갖가지 식재료를 다루며 식품을 보관하는 냉장고가 자리한다.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건강·안전이 위협받기 쉽다.
가족 건강을 지키는 주방 위생 관리 노하우를 알아봤다.
육류·어패·채소용 도구 구분해 써야
스테인리스는 연마제 세척 필수
실온 해동은 세균 증식 가능성 커
조리 도구
주방 위생의 첫걸음은 조리 도구다. 칼·도마·프라이팬·냄비 등은 가정이나 식당에서 항상 사용하는 물품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식중독의 약 25%는 조리 도구에서 균이 옮겨져 발생한 것으로 보고된다.
중요한 건 교차오염을 막는 것이다. 교차오염이란 식품과 식품 또는 표면과 표면 사이에서 오염 물질이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생닭을 다루던 조리 기구 그대로 과일·채소를 손질하다 캄필로박터균에 노출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캄필로박터는 닭·칠면조와 같은 가축의 장에 많은 세균이다. 이런 교차오염을 막으려면 육류, 어패류, 채소류, 과일류 손질 시 각각의 도마와 칼을 구분해 사용하는 게 좋다. 조리 도구가 충분하지 않다면 손질하는 식재료가 바뀔 때마다 손을 씻고 조리 도구를 세척해 쓴다.
재질별로 주의할 점도 있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새 제품에는 연마제가 남아 있을 수 있어 세척이 필수다. 키친·종이 타월에 식용유를 적당히 묻힌 후 표면을 닦아준다. 그런 다음 식초를 첨가한 물을 넣고 10분가량 끓인 뒤 깨끗이 세척해 사용한다.
알루미늄 식기는 날카로운 재질을 사용하면 산화피막이 벗겨지면서 알루미늄이 용출될 우려가 있으므로 금속 수세미로 닦지 않고 조리할 때도 나무 수저와 같은 부드러운 재질을 사용한다.
플라스틱 재질의 조리 도구는 높은 온도에서 변형이 일어나기 쉽다. 되도록 식품을 식혀 넣고 전자레인지에는 전자레인지용으로 확인된 조리 도구만 쓴다.
냉장고
냉장고는 기본적으로 냉장실은 5도, 냉동실은 18도 이하로 유지한다. 공기 순환이 잘 되고 적정 온도를 유지하려면 냉장고 용량의 70% 이내만 채우고 최소 한 달에 한 번 청소한다. 청소할 땐 장갑을 끼고 변색되거나 냄새가 나며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부터 폐기한다.
청소하는 동안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는 모두 꺼내 아이스박스나 여분의 냉장고에 얼음·얼음팩과 함께 담아둘 것을 권장한다. 내부는 세척·소독제를 사용하고 분리할 수 있는 서랍은 꺼내 따뜻한 비눗물로 세척한 뒤 마른 천으로 닦는다. 다시 식재료를 넣을 땐 재료 간 교차오염이 일어나지 않게 정리한다.
냉동실의 경우 상단엔 냉동 보관하는 조리 식품을 넣고 하단엔 육류·어패류를 보관한다. 가장 오랫동안 보관할 식품은 냉동실 안쪽에 배치한다. 냉장실 역시 문 쪽은 온도 변화가 크기 때문에 잘 상하지 않고 금방 먹을 것만 보관한다.
금방 먹을 육류·어패류는 신선실에 넣는데 어패류는 씻어서 밀폐 용기에 담는다. 채소·과일은 흙이나 이물질을 제거한 후 신문지가 아닌 밀폐 용기에 넣어 보관한다.
대전을지대병원 가정의학과 오한진 교수는 “냉장·냉동 상태에서도 식중독균은 증식이 억제될 뿐 아예 죽는 것은 아니므로 가급적 적당량만 조리한 후 곧바로 먹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식재료
식재료는 선도 확인이 우선이다. 육류의 경우 선홍색을 띠고 지방의 색은 희고 탄력이 있어야 한다. 어류는 비늘이 피부에 잘 붙어 있고 어종 특유의 색과 광택이 살아 있어야 신선한 것이다. 눈은 돌출돼 있고 아가미는 선홍색이며 배 부분을 누르면 탱탱한 게 좋다.
달걀은 표면이 까슬까슬하고 광택이 없으며 흔들었을 때 소리가 나지 않으면 양호하단 신호다.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박민선 교수는 “식재료는 신선한 것으로 필요한 만큼만 사고 식기세척기 등 열이 많이 발생하는 기구 주위를 피해 보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소는 물기를 제거한 후 밀봉해서, 육류는 다른 식품과 따로 분리해 보관한다. 어류는 내장을 제거하고 흐르는 물로 씻어 물기를 없앤 다음 다른 식품과 접촉하지 않도록 분리해 냉장·냉동 보관하는 게 정석이다.
요즘 식재료를 대용량으로 구매한 다음 소분해 냉동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해동해 먹는 집이 많다. 그러나 완전하게 해동하지 않으면 조리시간이 길어지는 데다 식품 외부만 익고 내부는 잘 익지 않아 유해 세균이 증식할 수 있다.
냉장 해동할 땐 육즙이 다른 음식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안전한 온도를 유지한다. 냉장 해동하지 않을 땐 차가운 물에 2시간 이내에 해동하고 교차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밀봉하거나 뚜껑을 덮어둔다. 실온 해동은 해동 시간이 길어져 그 과정에서 세균이 증식할 수 있으므로 피하는 게 좋다. 떡·빵 등 부피가 작은 식품은 전자레인지를 이용할 수 있다.
생채소와 쌈, 샐러드, 과일류 등 비가열 조리 식품은 육류나 가금류, 알류와 분리해 보관하고 세척을 철저히 한 후 섭취해야 탈이 안 난다. 많은 양을 조리해 차갑게 보관한 음식은 유해 세균을 제거하기 위해 중심부 온도가 74도 이상이 되도록 재가열한 뒤 섭취한다. 이땐 단순히 데우는 수준이 아니라 부글부글 끓을 정도로 충분히 가열해야 한다.
식중독 대처·예방 키포인트
1 구토·설사·복통 증상 확인
대부분의 식중독 환자는 소화기 증상부터 호소한다. 독소나 세균이 음식물과 함께 체내로 들어오면 이를 신속하게 제거하기 위해 구토·설사·복통 증상이 나타난다. 세균이 장벽에 붙거나 뚫고 들어가면 전신 발열까지 생기기도 한다. 일부 세균이 만들어내는 독소는 신경 마비, 근육 경련, 의식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2 일차 치료법은 수액 공급
구토·설사로 손실된 수분을 보충하고 전해질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면 수액 공급이 일차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흡수가 빠르도록 끓인 물에 설탕이나 소금을 타 마시거나 이온음료를 마시는 게 도움된다. 이후 설사가 줄면 미음·쌀죽 등 기름기가 없는 음식부터 먹는다. 설사가 심하더라도 탈수 예방을 위해 물을 충분히 마신다.
3 금식, 지사제 임의 사용 주의
설사한다고 무조건 굶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장 상피세포는 2~3일만 음식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흡수 능력이 떨어진다. 또한 부족한 영양 공급 자체만으로 설사가 악화할 수 있다. 지사제·항구토제를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 된다. 잘못 사용하면 독소나 세균의 배출이 늦어져 회복이 지연되고 경과가 나빠질 수 있다.
4 어린이·노약자는 꼭 병원 가야
보통의 면역력과 체력을 가진 사람은 식중독에 걸려도 자연 치유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나 노약자는 병원을 찾는 것이 좋다. 특히 고령자는 식중독 이후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하고 미음·죽으로 대체하면 근육이 쉽게 빠진다. 이는 반복적인 소화불량과 복통으로 이어지고 호흡기 감염병 등 다른 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5 봄철 음식 관리 방심 말아야
봄에는 음식 관리에 방심하기 쉽다. 야외 활동 시 음식은 냉보관하고 상온에 2시간 이상 두지 않는다. 고령자의 경우 평소에 체중과 체지방이 감소하면 체력도 떨어진다. 식중독에 걸렸을 때 빠른 회복이 어려우므로 식사량을 일부러 지나치게 줄이지 않는다. 도움말=박민선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김선영(kim.suny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