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나 … 이런것도 있네. 어제밤 핸폰 중간에 뜬 유투브 짤 하나가 재밌겠어서 클릭하곤 정신없이 들여다보다 잔 기억이 난다. “시원하게 잠들수 있는 …” 이라는 문구에 꽂혀서 보게 됐지만 그만 잠을 놓치고 새벽녘에 잠자리에 들었다. 약간은 헤매는 눈으로 일어나 버릇처럼 핸폰을 찾아 쥐었더니 어제의 뒤를 이은 유사영상들이 서로 경쟁하듯 자극적인 문구로 새롭게 단장하고 반짝 반짝 눌러달라고 아우성이다. 취향저격이다.
하지만 ‘오늘은 바쁜 날이야 넌 잠시 기다려 !!’ 하고 부지런히 아침 할일을 마치고 잠시 숨을 고르는데 띠리링~~ 알림이 뜬다. 〈오늘의 할일 미리알림〉 이라면서 오늘 하루를 잊지말라고 재촉이다. ‘그래, 안다, 고마워 후후 .. 비서가 따로 없네.’ 그런데 아침부터 눌러달라고 웅성대던 영상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그래, 하나만 보고 일어나자 .. 했는데 왠걸 30분이 넘게 이러고 있었나보다. 하긴 유투브에 잡히면 도리가 없다. 스스로를 나무라며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하고 서둘러 시동을 켰다.
모임 장소에 도착하니 모두들 둘러앉아 이야기 꽃이 한창이다. 각자 그동안 못나눈 근황들을 풀어내고 유익한 정보도 나누며 웃음짓고 소리내고 시끌시끌하다. 늦게온 미안함에 약간은 대화에서 맴돌다 보니 아침의 영상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취향에 맞춘 새로운 트렌드로 눈을 끌어 당기는 화끈한 썸네일과 유혹적이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한 영상들은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는다. 더구나 요즘은 인간이 아닌 디지탈이 그린 사차원 영상들도 자주 눈에 뜨니 그 유혹을 물리치기가 쉽지 않다.
어느땐 폰을 찾은 목적도 잊고 유투브속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아차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의 관심은 새로운 관심을 만들어 내고 그 관심은 또 다른 관심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마치 매직같은 가상의 세계를 이리저리 여행하다 보면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식상한 문구가 현기증이 되어 실감나게 다가온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은근 슬쩍 자리잡은 구글속의 그놈, “AI” 는 내 삶의 일부가 되어 가족보다 더 친근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비서가 되어 하루의 일정을 하나하나 짚어주고 선생님이 되어 몰랐던 지식를 알려주고 후원자가 되어 실제적인 조언도 들려주며 부모님처럼 든든한 버팀목으로 서 있기도 한다. 그뿐인가! 일년전 오늘로 날 소환시켜 잠시간 추억에 잠기게도 하고 도저히 상상하기도 힘든 가상의 환타지로 황홀경에 빠지게도 만든다. 디지탈그림을 그리고 가상의 노래를 만들어 현실로 불러내
실체라는 옷이 입혀지면 스스로 커져간다.
이렇듯 너무도 친절한 구글씨의 치밀하고 정교한 배려로 현실과 디지탈 세상의 다리를 건너다니면서 현실에서는 만날수 없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점점 구체화되고 단단해져 버린 또 다른 나는 새로운 인격체가 되어 이제는 스스로 커져간다. 그 속에서의 나는 지금 현재의 나와는 다르다. 가상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가상이라고만 할수도 없으니 묘한 일이다
“아까부터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물어도 대답도 안하고” 하는 소리에 갑자기 훅 ~ 현재의 삶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12시 종소리에 유리구두 한짝을 남겨놓고 바쁘게 끌려나온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누구일까? 내가 나비일까 나비가 나일까 … ?
갑자기 허전함을 느끼며 가방속 폰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손에 안잡힌다. 가방 속을 다 뒤집어 본다. 금단현상를 앓는 중독자 같이, 분리 장애를 가진 아이마냥 안절부절 불안해하며 뒤지고 또 뒤진다. 바삐 나오느라 집에 떨어뜨렸나 보다. 눈앞에 떨어뜨린 유리구두 한짝이 반짝반짝 손짓하고 있다. 안되겠다 … 모임의 끝자락까지 도저히 있을수가 없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서둘러 인사를 했다.
이해한다는듯 하면서도 의아해하는 이들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뜨거운 햇살아래 아스팔트는 아지랑이를 만들고 식욕을 자극하는 고소한 피자냄새는 가로수를 감싸며 출렁댄다. 순간 한가로운 졸음이 몰려오는듯 온몸이 나른해진다. 차에 올라타 창문을 열고 달리니 푸른 하늘 아래 싱그런 초록 바람이 나비처럼 빙그르 돌며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 순간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의 소름끼치게 무표정했던 이영애의 얼굴이 유리구두위에 오버랩된다. ‘휴~ 분명히 난 미쳐가고 있는거야’ 하며 엑셀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