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이 남아 있는데, 임산부나 아프신 분들 중에 필요한 분 계신가요?”
지난 25일 괌의 한 호텔. 전날 괌을 덮친 슈퍼 태풍 ‘마와르’의 영향으로 발이 묶인 이모(40)씨는 방을 구하지 못해 로비에 머무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찾아다녔다. 자신의 방은 이미 임산부가 있는 부부에게 내줬고 자신은 현지에 사는 지인의 집에 묵기로 한 상태였다.
그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저도 한달만 있으면 아빠가 된다. 임산부들이 철분제가 없다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서로 그러고 있으니 눈에 너무 밟혔다”며 “지인과 함께 인근 호텔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임산부나 몸이 안좋으신 분들 중에 거실이라도 쓸 분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괌의 관문인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은 태풍의 영향으로 침수된 활주로와 시설 복구를 위해 운영을 중단했다. 사흘째 귀국하지 못하고 괌에 고립된 한국인 관광객들은 부족한 숙소와 음식ㆍ생필품 등을 서로 나누며 버티고 있다. 외교부는 체류 중인 관광객이 3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방 하나 남는데 필요하신 분”…서로 도움의 손길
괌에 발이 묶인 관광객들에게 당장 시급한 건 몸을 누일 곳이다. 일부 관광객들은 원래 투숙하고 있던 호텔에서 연장을 받아주지 않아 호텔 로비 등에서 불편한 밤을 보내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는 관광객들끼리 서로 ‘숙소 품앗이’를 하며 버티고 있다.
자영업자 이모(34)씨는 “호텔 연장이 안 돼서 밤 11시까지 로비에 있었는데, 어떤 분이 방을 내주신다고 해서 겨우 눈을 붙였다”고 말했다. 다른 관광객 역시 “간이 침대라도 하나 비어있으니 괜찮으시면 말씀해달라고 하는 분이 있었다. 서로서로 도우면서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괌에 거주하는 교민들도 “지켜만 볼 순 없다”며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20년째 괌에 거주 중인 안모(48)씨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데, 임산부나 지병을 가지신 분들께 방을 무료로 드리려고 호텔을 돌아다니면서 로비에 머무는 사람들을 찾아보고 있다. 교민들이 작은 도움이나마 드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항 운영 중단이 얼마나 이어질지 아직 확실하지 않아 당분간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25일 다른 관광객이 내어준 방에서 밤을 보낸 이씨는 “일단은 버티고 있지만, 오늘밤은 진짜 호텔 로비나 차에서 잠을 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태풍에 쓰러진 나무가 자동차를 덥친 현장. 로이터
음식과 생필품 부족, 수도ㆍ전기 미복구로 인한 고통 등도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일부 식당이 영업을 재개하긴 했지만, 체류 중인 관광객들이 많아 다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한국인 관광객들은 재고가 채워진 마트나 영업 중인 식당이 있으면 서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음식을 대신 사다 주며 버티고 있다.
또 일부 관광객들은 숙소에 물이 나오지 않아 바닷물을 퍼날라 변기물을 내리고 있고, 물이 나오는 방이 있으면 서로 빌려주며 씻고 있다고 한다.
한 관광객은 “아침에도 다른 부부와 함께 바닷가에 가서 물을 떠왔다. 잘 곳조차 못 찾은 분들도 있으니 못 씻는 걸 불평할 상황은 아니다”고 전했다.
괌 정부는 이날 “홍수로 인해 물이 오염되었을 가능성에 대비해 해변이나 풀장 등 물에 대한 접촉을 삼가고, 물은 끓여서 식혀 먹으라”고 권고했다.
이르면 30일 공항 정상화…항공기 증편 예정
괌 정부는 전날 홈페이지를 통해 “터미널과 비행장에 대한 피해 점검을 완료했고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며 “미 연방항공청(FAA) 교통관제탑과 협력해 현재 인도주의적 지원ㆍ화물 항공편은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항 재개까진 며칠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안토니오 B. 원 팻 국제공항은 이날 오전 “빠르면 오는 30일에 서비스가 재개될 수 있을 걸로 예상된다”고 공지했다.
항공사들은 공항 정상화 시점에 맞춰 추가 항공편을 투입하기 위해 준비중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공항 운영이 재개되는 시점에 맞춰 기종 변경ㆍ추가편 운항 등으로 공급을 증대해 체류 관광객들 문제를 해결할 계획”이라고 했다.
진에어 관계자도 “폐쇄된 활주로가 열리면 추가로 항공편을 투입할 계획이다. 현지 상황이 정상화되면 구체적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여행사들도 보상안 마련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모두투어는 자사를 통해 현지 숙소 등을 에약한 관광객들이 추가로 현지 호텔을 계약하면 객실당 1박에 10만원, 최대 90만원을 지원하는 보상안을 마련했다.
하나투어와 인터파크 투어도 귀국이 불가능해 현지에 추가로 머무는 관광객들에게 객실당 1박에 10만원의 지원금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러나 공항 운영 재개가 지연될 경우 관광객들의 피해도 커지고 여행사들의 손실도 늘어날 전망이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