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초반, 경복궁 뜰에서, 대학 졸업생들이 과별로 교수님들을 모시고 사은회라는 모임을 가졌다. 장기자랑 시간에 나는 용기를 내어 영시를 읊었다. 연애편지를 썼다가 찢어버리고 짝사랑한 여학생, 이제 졸업하면 못 만날 여학생에게 뭔가 자신을 보여주려고 그랬을 것이다. 윌리암 워즈워스의 무지개라는 시를 외워서 읊었다.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이렇게 사직하는 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라는 시로도 유명하다.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어요/ 내 삶이 시작되었을 때도 그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그래요/ 내가 늙어진 뒤에도 여전히 그러하기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차라리 죽고 싶어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기는 내 생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경건함으로 이어지기를.
어린이가 무지개를 바라보고 신비로워서 가슴이 뛰듯, 자연의 무한한 질서와 사랑, 아름다움과 은혜를 늙어진 뒤에도 매일 감사하며 경건하게 살고 싶다고 시인은 노래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큰 손녀 대학 졸업식에 참여하러 큰 아들네 집에 가서, 아들들에게 배우고 그들의 보호를 받을 때 “너희들이 나의 선생님이고, 나의 아버지가 되었어!”라고 말했다. 어려서 귀여운 아이들의 어깨를 아버지인 내가 안아 주었듯이, 큰 아들이 내 어깨를 안아 주며 웃었다.
요즘 재미있게 읽는 책이 뭐냐 고 큰 아들에게 물었다. 이 창래씨의 소설 Loft라고 하며 책을 주었다. Loft 란 소설을 읽어보니, 영어가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소설의 주인공도 동양인이 아니라, 부동산과 정원 관리로 부자가 된 미국 가정이고, 그 배경도 한국과 관계없는 미국 중류사회이다. 무엇보다 소설이 재미있어 베스트 셀러 반열에 들었다. 참 대단한 한국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How to Win Friends & Influence People이라는 책이 4권이나 큰 아들 책장에 쌓여 있다. 그 책은 아들이 대학병원에서 그가 지도하는 의사 인턴들이 새로 올 때 마다 선물로 주는 책이고, 전에 나도 하나 주어서 읽었는데, 지금은 없어서 아들에게 말하니 한권 가지라고 한다.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이라고 한국말로 번역된 책이다. 6천만 부가 팔린 책, 1936년에 출판되어 지금까지 출판이 거듭되는 책, 한 번 읽고 잊어버릴 그런 책이 아니고, 계속 읽으며 나의 인간관계를 좋게 고쳐 나가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삼두근이라는 팔 근육이 줄어들어 팔 밑에 늘어져 덜렁거리는 피부를 아들에게 보여 주고, 아령도 팔 굽혔다 펴기도 해봤는데 소용없다고 했다. 작은 아들이 큰 아들 방 벽에 달린 고무줄을 잡고 밑으로 끌어당겨보라고 했다. 늘어졌던 근육이 팽팽해진다. 그렇게 밑으로 당기는 운동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집에 와서 아마존에 Pull up band를 찾으니 같은 고무줄이 보여 7불 주고 사서 내방에도 걸어 놓았다. 체육관에 가서 팔근육이 팽팽한 젊은이에게 물어보니, 삼두근을 발달시키는 운동기구를 알려준다. 연습하면 근육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진작 물어볼 걸, 하지만 아직도 희망이 있다.
아들들이 가진 아이패드가 글씨 크기를 조정하여 늙어가는 눈으로 독서가 편할 것 같아 나도 하나 사야겠다 고 하니, 저들이 아마존에 주문해서 다음날 도착했다. 도착한 아이패드를 나의 것으로 지문을 만들고 내 메일을 받게 두 아들들이 협력하며 설치한다. 작은 아들은 컴퓨터나 핸드폰에 문제가 생기면 수시로 고쳐주고 가르쳐 주는 선생이다. 아이패드로 읽을 책들도 두 권 쇼핑했다. 이젠 집에 가서 자리에 누어서도 큰 글씨로 책을 읽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너희들이 나의 선생님이고, 나의 아버지가 되었어!” 애들이 아이패드를 손보고 있을 때, 내가 말했다. 싱글벙글 좋아하는 나에게, 큰 아들이 내 어깨를 안으며, 그렇게 좋아요? 하며 웃는다.
100세 시대를 향해 사람들 수명이 길어지니, 부모와 자식의 역할이 바뀌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홀로 남은 늙은 엄마를 모시고 매주 교회에 오는 따님들, 잘 걷지 못하는 아버지 팔을 부축하는 자녀나 손자들, 주위에 찾아보면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가르치고 보호하는 역할이 바뀌어 가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늙어 갈수록, 배운 사람이든 아니든, 부자이던 가난하든, 우리는 어린 아이, 영아시절로 퇴행하고, 장성한 아이들에게서 배우고 보호받기도 한다. 삶의 수레바퀴를 돌려, 어린이를 어른의 아버지로 바꾸며 사람을 땅위에서 영원히 살려가는 과정도, 워즈워스 시인이 노래한 자연의 경건함 속에 포함할 수 있을까? 늙어가는 외로움과 아픔 마저도, 자연의 경건 속에서 삶의 은혜와 감사로 연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