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한국땅에서 쓰러졌다가 73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루터 스토리 육군 상병의 유족은 스토리 상병을 가족 품으로 돌려준 한국 정부와 국민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스토리 상병의 조카인 주디 웨이드씨는 29일 조지아 앤더슨빌 국립묘지에서 열린 스토리 상병 유해 안장식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루터 삼촌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챙겨준 한국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스토리 상병은 1950년 9월 1일 낙동강 전투에서 북한군에 포위될 위기에 처한 중대의 철수를 엄호하다 전사했으며 73년 만에 유해가 발견돼 지난 4월 6일 유족에 그 소식이 전달됐다.
웨이드씨는 “정말 흥분됐고 기뻤다”며 “난 그날 미용실 예약이 있었는데 미용실에 가서 ‘누가 나 좀 안아줘’라고 했고 모두가 안아줬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서 ‘루터 삼촌이 집에 온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스토리 상병이 전사한 이후에 태어난 그는 8∼13세 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할아버지(스토리 상병의 아버지)에게서 루터 삼촌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자기의 아기(baby)를 잃었다고 했다. 루터 삼촌이 16살 때 군에 입대했기 때문에 여전히 아기라고 생각했고, 할아버지는 아기를 잃은 슬픔을 지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토리 상병의 아버지는 소작인이었고, 스토리 상병과 누나(웨이드씨의 어머니)는 어릴 적 밭에서 목화 수확을 도와야 했다.
당시 생활에 대해 웨이드씨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엄마는 하루 세끼 고구마를 먹은 이야기를 하곤 했다”며 “엄마는 면화 꼬투리에서 면을 뽑아내느라 밤이 되면 손가락에 피가 났다고 했다. 가족 모두가 생존을 위해 그래야 했다”고 밝혔다.
조지아주의 앤더슨빌 국립묘지에서 29일(현지시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루터 스토리 미육군 상병의 유해 안장식이 진행됐다.
웨이드씨는 언젠가 루터 삼촌을 찾을 것이란 희망을 품었느냐는 연합뉴스 기자의 질문에 “난 그랬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유해 수습이 불가능하다고 하니까 ‘루터 삼촌이 영원히 사라지는구나’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됐다”고 토로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루터 삼촌을 어떻게 수십년간 마음에 간직했느냐는 질문에는 “가족이잖아요”라며 “당신 가족이 한국과 미국을 위해 이곳에 싸우러 왔다가 희생됐다고 생각해보라”고 반문했다.
그는 2017년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에 자신과 어머니(스토리 상병의 누나)의 유전자 정보(DNA)를 제공했고 DPAA는 2021년 한국 상대포 인근에서 발견된 유해 한 구를 감식한 결과 스토리 상병으로 확인했다.
웨이드씨는 “어머니는 DNA를 제공하지 않으려 했다. 당시 어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눈 감을 날이 머지않은 상태였고 난 ‘엄마 제발 DNA를 보내자’고 해 어머니와 내 볼 안쪽을 면봉으로 닦아 DPAA에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어머니는 왜 DNA를 제공하는 것을 원치 않았는지 말해주지 않았다”며 “어머니는 루터 삼촌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너무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루터 삼촌이 왜 알지도 못하는 한국을 위해 싸웠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그는 애국심이 강했다. 그는 군대에 있는 삼촌들이 집에 오면 그들과 대화했으며 정말 군인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웨이드씨는 지난 4월 26일 워싱턴DC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당시 만남에 대해 “윤 대통령과 김 여사는 매우 친절하고 상냥했다”며 “그들이 루터 삼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내가 만난 모든 한국인이 그랬다. 그들은 루터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를 사랑했고 난 한국인들을 내 형제, 자매처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