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장 속에 있는 물건을 찾기 위해 뒤적이다 결혼 전, 볼 살 통통한 청춘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을 발견했다. 마치 내가 찾았던 것처럼 그 자리에 앉아 펼치고 한 장씩 넘기기 시작했다. 두둑하게 쌓인 먼지를 털며 되돌아 간 듯한 시절의 사진들이 반갑고 새로웠다. 입꼬리는 절로 귀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고 지긋한 눈빛은 그리움도 아닌 애틋한 감정들과 섞여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사진속의 풋풋한 내 모습들을 보며 다른 사람을 보는 듯한 묘한 감정속으로 들어가다 사진 한 장에 멈추었다.
당신은 무슨 일로/그리합니까?/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을숙도 갈대밭 풍경을 찍은 사진 위에 김소월의 시 개여울을 실크스크린한 사진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함께 스케치하며 사진도 찍으러 다녔던 친구가 선물했던 사진이다. 좋아했던 그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니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떠올랐다.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셔터를 신중하게 눌렀던 시간들을 추억했다. 지금은 마음껏 사진을 찍어서 맘에 드는 것만 골라서 현상하면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필름 값도 비싼데다 현상을 다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껏 찍을 수가 없었다. 그 시간들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보고싶어 졌다.
을숙도의 갈대밭 풍경은 인상 깊은 그림처럼 내 기억속에 남아있다. 그곳은 남편과 두번째 만난 날 데이트를 한 장소이기도 하다. 을숙도 가는 버스 안에 나란히 앉았을 때의 두근거림이 지금도 느껴진다. 처음으로 가까이 앉아 어깨가 닿았던 날이었고 쑥스러워서 옆으로 고개를 돌리지 못했던 기억도 선명하다.
그 버스 안에서 남편은 가족에게 입사선물로 받은 몽블랑 만년필을 잊어버렸다가 버스 종점에 가서 다시 찾았던 해프닝도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나는 그 만년필이 그렇게 비싼 줄 몰랐고 그것을 주워서 보관했던 버스 종점의 사무실 직원도 아마 그 가치를 몰랐던 것 같다. 뭉툭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보통의 만년필이라고 나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작은 배를 타고 을숙도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발길이 만들어 놓은 듯한 울퉁불퉁한 오솔길이 있었고 문을 닫은 작은 찻집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어깨만큼 올라오는 갈대 사이로 섬을 한바퀴 돌고 나면 신발은 흙투성이가 되어서 엉망이었던 생각도 난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갈대와 하늘이 만나는 풍경을 떠올리면 지금도 갈대들이 바람과 함께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귀가 기울여 진다.
어느 날 을숙도의 갈대숲 위를 지나가는 다리가 건설되면서 기억속의 풍경들이 사라졌다. 예전의 그 느낌은 사라지고 더 이상 신발에 흙을 묻힐 일도 없어졌다. 갈대숲과 철새의 터전인 을숙도 개발이 시작되면서 시민환경단체는 긴 시간 치열하게 반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개발의 승리로 돌아가고 결국 을숙도의 심장을 통과하는 을숙대교가 개통됐다.
지금은 갈대숲 갯벌에 박힌 거대한 대교의 다릿발들이 평화롭던 자연을 지배하며 우뚝 솟아 있다. 갈대위에 뿌리던 아침 햇살도, 지는 태양의 황홀한 석양들도 잘라 놓았다. 철새들은 갈대와 바람이 들려주는 노래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졌다. 대신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들의 소음에 더 익숙해졌을 거라 생각하니미안하고 슬퍼졌다.
한국 살 때 가끔 을숙도의 갈대밭이 생각 날 때면 대신 낙동강변으로 갔다. 을숙도의 풍경과는 달랐지만 평화로운 느낌에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차 한 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간 주위에는 넓지는 않았지만 갈대밭이 있었다. 그 사이에 차를 주차하고 앉아 있으면 포근한 느낌이 들었고 차 안에서도 강과 주위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며 스케치를 하기도, 편지를 쓰기도 했던 추억의 장소였다.
오래된 사진첩 속에서 보았던 을숙도 사진은 또 다른 추억의 글과 그림으로 남아 있는 기억들도 불러냈다. 나는 원래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고 한 참을 앉아 딴 짓을 하다 일어섰다. 사람들의 편리와 개발사업을 위해서 사라져가는 자연에 안타까운 마음을 느끼며 을숙도의 갈대밭 사진위에 쓰여진 김소월의 개여울을 불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