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손녀 대학 졸업식 식장에 갔다. 뉴저지 라커스 대학교, 엔지니어링 대학 (공과대학) 학부생들만의 졸업식이 큰 체육관(Jersey Mike’s Arena)에서 있었다. 8천명 관중석이 가족들로 거의 찼고, 경기장 바닥에는 1000 정도의 졸업생들이 앉았다. 아들이 라커스 대학에서 일을 하기에 그의 두 딸들은 수업료 혜택을 받으며 그 대학을 다니고 큰 딸이 이번에 졸업했다.
미 공군 사관 학교나 해군사관 학교 매년 졸업생이 각각 천명 정도인데, 라커스 공과대학교 학사학위 졸업생 엔지니어들이 천명 정도로 많은 것이 나에게는 놀라웠다. 학부 졸업생이 천명 정도라면 공대생 학부 학생들은 4천명이 넘을 것이고 대학원 학생들도 많을 것이 아닌가?
졸업식장인 체육관 중앙 공중에 4면으로 된 스크린을 통해 관중석 어디에서나 졸업생들이 한 사람 씩 졸업 증서를 받으려 단위에 올라설 때 크게 조명되어 보였다. 한 학생의 이름이 불릴 때 박수와 함성이 터지기도 했다.
여자 졸업생 숫자도 많아 거의 남자 졸업생 숫자를 따라가는 것 같아 보였다. 엔지니어라면 거의가 남자들이었는데, 세상이 바뀌어 가며, 여자 엔지니어 숫자가 늘어나는 경향 같다. 엔지니어들이 다른 전공자들보다 수입이 많다면, 여자들의 수입도 많아지는 경향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백인 중심 대학에서 공대 졸업생들은 백인이 다수 인종이 아니고 인도 출신이 많은 것 같은 것도 새롭다. 공대 졸업생 들은 갈색인종, 백인, 황인, 흑인이 다양하게 섞였다. 갈색인들 엔지니어가 많아 진다는 것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졸업자 명단에서 Kim과 Lee 성을 찾아보니 14명이다. 손녀도 그 김씨 성을 가진 졸업자 중에 한명이다. 김씨 이씨 외의 한국계 미국인도 많을 것이다.
공과대학 졸업생 명단에서 전공별 학생수를 살펴보니 대략 다음과 같았다: 전자 및 컴퓨터 공학 (300명) 기계공학, (200), 생물의학 (90), 화학 (80), 산업 공학 (75), 토목공학 (70), 환경 공학 (70), 우주 공간 공학 (60), 응용 과학 공학 (40), 자료 공학 (20). 생물 환경 공학 (3).
아들네 집에서 저녁때 운동이 필요해서 동네를 한바퀴 걷을 때, “앨라 할아버지!” 하고 나를 알아보는 인도 여대생도 그녀의 부모와 걷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손녀와는 초등학교부터 같은 동네에 사는 오랜 친구로 나도 여러 번 만났다. 그들과 같이 걸으며 손녀의 친구 아버지인 키가 큰 인도인 전자-컴퓨터 엔지니어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인도학생들이 의대, 공대에 그렇게 많게 되었는가?
인도 초대 총리 네루(1947-1964재임)가 인도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다고 했다. 마음의 평안을 중시하는 불교와 힌두교 등 종교의 전통에서, 경제적이고 과학적인 IT 산업국으로 바꾼 것이 인도 학생들이 공과 계통에 많은 이유라고 했다.
힌두교 민법전을 바꾸어 사회적 차별을 금하는 헌법을 만들고, 미망인들의 상속권을 인정하는 남녀 평등권을 주었으며, ‘과학을 통해 우리도 빈곤에서 탈출하자’는 정책이, 많은 공과대학을 세우고, IT 강국을 만든 초석이라고 한다.
과학을 실 생활과 연결하는 엔지니어는 신분계급 탈출의 효과적인 방법으로 증명되고, 14억 인도인들 중에 공대에 가는 수는 작으나, 엔지니어 숫자를 합하면 작은 나라들의 엔지니어들 숫자 보다는 많다고 설명한다.
신분에 관계없이 엔지니어 대학을 나오면 신분이 분명하게 달라지고 수입도 많아지는 생생하고 살아 있는 본보기를 경험한 불가친족 자손들까지, 일편단심 공과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에 매달리기에 공과 대학 입학엔 경쟁이 극심해도, 세계적인 IT 지도자가 나온다고 한다. 인도인들이 고유적으로 우수한 수학과 식민지에서 배운 영어가 IT 산업을 세계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학생 군사 훈련(ROTC)을 마친 손녀가 해군 장교가 되는 임관식에도 참여했다. 12명의 해군 소위가 임관 되었는데, 손녀를 포함한 두 명이 한국인이고 10명은 모두 백인 인 것도 특수하게 보였다. 10명의 백인 중엔 1명의 여자도 있었다. 손녀는 해군 비행훈련을 받으려 간다고 했다.
간부 후보 한 명씩 단위에 올라가서 현역장교로 임관될 때 부모들이 그들 양쪽에서 하얀 제복의 어깨위에 소위(Ensign) 견장을 달아준다. 손녀가 단위에 올라갈 때, 조부모인 우리도 단위에 올라갔다. 하얀 해군 제복을 입고, 제 부모가 달아준 소위 계급장을 어깨에 단 손녀, 12명 중에 키가 제일 작지만, 단단한 손녀가 해군 소위의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좋은 성적 (Summa Cum Laude)으로 산업 엔지니어가 되었고, 키는 작아도 어려 서부터 태권도 흑 띠를 두르고 맹렬히 단련한 몸으로 손녀가 어디서 무얼 하던, 살아가면서 만나는 문제들을 잘 풀어 나갈 것을 믿고 기원한다.
아기였을 때 그렇게 신기하고 귀엽든 아기가 이렇게 의젓한 해군장교 엔지니어가 되었으니, 놀랍고 감사하다. 가는 세월이 나에겐 무상하게 느껴져도, 젊은이들에겐 꿈을 이룰 기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