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시작과 끝을 연결해서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 하나 있다. “Who Am I?” 단순한 정체성에 관한 문제보다 세월이 지나면서 더 많은 과제를 가진 질문이 됐다. 오랫동안 내 입안에서 굴러다니며 둥글게 잘 다듬어진 돌 같은 질문이다. 이 질문에 따라 내 삶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길을 찾는 것 같다.
모국이라는 든든한 배경없이 미국사회에 접목해서 새로운 뿌리를 내리느라 바쁘게 젊은 시절을 보냈고 늘어난 가족은 흩어져 산다. 몇 세대가 지나야 사회에 동화된다니 이민 1세인 내 뿌리는 여리다. 연말을 영국 시집식구들과 보내고 돌아온 딸이 재미난 사진을 많이 찍어왔다. 사돈네 가족들 반가운 얼굴을 보다가 한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 꼬마 손주가 끼인 그 집안 4대 남자들이 나란히 선 사진이었다. 안정감과 평화가 4 남자의 닮은 모습에 자랑스럽게 감돌았다.
그 사진이 주는 감정이 좋아서 친정가족들과 공유했다. 막내 여동생이 나와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2살에서 85세 사이, 4대 남자들이 교류하는 정이 부럽다고 했다. 내가 남편에게 여러 번 대대로 든든한 울타리를 가진 사돈집안이 부럽다고 한 것이 남편의 기분을 거슬렸다. 남편은 지난주 딸네가 다니러 오니 사위에게 그의 부모 결혼사진을 보여줬다. 우리도 어디서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부모와 선조를 가졌다는 묵시였다. 1940년대 초, 하얀 드레스를 입은 앳된 신부와 하얀 턱시도를 입은 젊은 신랑의 얼굴에서 남편을 본 사위는 멋지다며 영국 가족들에게 보여준다고 사진을 찍었다.
신난 남편은 이번에는 어딘가 꽁꽁 숨겨 두었던 그의 옛 앨범을 가져와서 사위에게 보여줬다. 나도 아주 오래전에 잠깐 보고 잊어버린 앨범이다. 남편의 고향 교토에서의 어린시절이 고스란히 흑백 사진으로 간직되어 있었다. 어린 사내아이의 여러 모습에 이어서 초등학교 교복을 얌전하게 입고 나란히 겹겹으로 줄을 선 많은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단체사진이 사위의 호기심을 끌었다. 누가 누구인지 분별 못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닮은 아이들 속에 남편의 어린시절이 숨어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사위는 며칠 후 사진 하나를 보냈다. 2차 대전에서 승리한 지 39주년 되는 해에 가진 특별행사를 보도한 1984년 지역 신문기사를 스크랩 한 것이었다. 그의 할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신문에는 포츠머스에 있는 D Day Museum에서 5년에 걸려서 25명의 전문가들이 창조한 전승을 기념하는 거대한 자수 품 전시에 사돈과 그 아버지가 함께 봉사한 사진이 실렸다. 빛 바랜 사진이었지만 의가 맞는 부자가 환하게 웃는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외아들인 사돈은 그의 아버지와 진득한 사랑을 나누고 그것은 아들로 이어졌다. 이제 사위는 그것을 내 손주와 나눈다.
영국에는 전통을 지키는 좋은 풍습이 많다. 한번 무엇을 하면 변함없이 아름답게 대대로 이어가는 것이 어쩌면 사람들을 하나로 뭉쳐주는 것 같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가진 Welsh Association of Male Choirs 2018년 축제 공연을 봤다. 1962년에 형성되어서 3년 마다 공연하는 남성합창 축제는 영국 전 지역에 있는 100 그룹이 넘는 남성합창단이 참여한다. 800명이 넘는 초대형 합창단의 화음은 웅장하고 깊었다. 최연소자인 13세 소년이 92세 노장과 함께 노래했다. 합창축제에 62년을 참여한 노인과 4-50년 이상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다. 15세 소년이 옆에 앉은 같은 합창단원인 할아버지와 눈을 맞추며 미소를 나누던 모습은 무척 부러운 정경이었다.
내가 타민족과 가정을 형성한 것은 다민족 다문화 미국사회의 반영이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불어난 가족들의 출신지 또한 다양하다. 우리 가족은 어느 한 나라의 풍습과 문화를 우선하지 않고 진정한 melting pot이 되어서 서로 동화되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좋은 풍습을 만들며 산다. 새로운 전통을 시작한 거다. 잘 생각하면 내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답이 나올 것 같다. 훗날 어린 손주들이 자라서 어느 한 나라만 가슴에 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느 나라이든 공평하게 받아들여서 화합하는 전통을 이어 줬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