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이가 꽤 많은 Y는 평소와 다르게 큰 가방을 두 개나 들고 모임에 나타났다.
“웬 배낭이에요?” “여기서 자려고요.” 그의 대답이 친근하게 느껴지면서도 엉뚱하게 들려 그 가방을 매개로 한 인사는 거기서 끝났다.
한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다가 지난주에 G가 소개한 유튜브 ‘미니멀유목민’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몇몇 친구는 그 유튜버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최근 영상을 모두 시청했다며 인상에 남은 정보를 주고받았다. 제목처럼 미니멀 라이프를 사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산티아고 길을 걸었다는 말에 그제야 그의 영상을 봐야겠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 그때 G는 Y에게 어서 그 가방을 보여 달라고 재촉했다. Y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사용했던 배낭과 그 안에 담긴 물품을 모임에서 소개하기로 했나 보다. 인사치레였던 Y의 가방에 관한 관심이 확 되살아났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하지만 얼마큼 멀리 걸을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최근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10㎞는 그럭저럭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정도의 걷기 능력으로 800㎞를 걸어야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안일하고 막연한가? 나이 60대에 들어 그 먼 길을 한 달이 넘는 시간을 들여 두 번이나 다녀온 Y가 참 대단해 보인다. 그런 Y의 배낭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배낭의 총 무게는 3.6㎏. Y는 자신에게 적절한 가방 무게를 그렇게 정했단다. 물건이 필요할 때 찾기 쉽도록 주머니가 많은 배낭이다. 걷는 동안 꼭 필요한 것들을 여러 날 생각하여 줄이고 또 줄여서 정하였고, 부피가 작고 가벼운 것이 선택되었음은 물론이다.
Y는 순례 여정에서 중요한 소지품은 몸에 꼭 지녀야 하고, 숙소에서는 나라마다 다른 잠자는 문화를 엿볼 수 있으며, 걷는 동안 발에 물집이 생기지 않게 하는 그만의 방법도 알려주었다. Y는 순례길에 가지고 갔던 그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졌으며 길 나서기를 주저하는 우리에게 “떠나보세요”, 용기도 주었다. Y는 동네 친구들 가운데 먼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이로써 그의 경험을 나눠주었는데 이것이 어떤 열매를 맺을 것만 같은 기대가 생긴다.
모임이 끝나고 나는 유튜브에서 미니멀유목민의 산티아고 순례길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헉! 그 유튜브의 주인 박 작가는 빈손과 맨발로(물론 신발은 신었다)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산티아고 순례객을 인솔한 것을 포함하여 6차례나 그 길로 다녀본 경험이 있다지만 대단한 실험정신이었다. 박 작가는 유튜버가 필요한 노트북을 포함하여 39가지 물품을 재킷 주머니에 나누어 담았다. 주머니를 아주 많게 디자인한 기능성 오리털 파카로 보였다.
나는 박 작가의 순례길을 열한 번째 에피소드까지 단숨에 따라갔다. 박 작가는 여행 작가이면서 미니멀리스트로 자신을 소개한다. 그가 가진 전 재산은 가방 한 개와 소지품 80개란다. 그중에서도 쓰지 않거나 필요가 없어진 물건은 그때그때 팔아서 없앴다. 그것만 가지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 삶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자연 친화적인 생활, 꼭 필요한 지출, 건강 관리 등 자기 관리에 철저해 보였다. 미니멀 라이프가 주는 기쁨과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인가 보다.
Y의 배낭과 박 작가의 빈손 순례를 만난 그다음 날은 이웃 S가 이삿짐 싸는 걸 도왔다. S는 다른 도시로 이사하면서 짐을 줄이기 위해 자신에게 필요가 덜한 물건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다. S는 주방용품을 상자에 담던 사람들에게 따로 밀어놓은 주방 도구 서너 개는 남겨두도록 부탁했다. 일손을 거들던 사람들이 떠나고 S는 무거운 질병이 있는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줄 팥죽을 쑤었다.
이번 한 주간은 여러 사람이 짐 싸는 걸 간접 혹은 직접 경험했다. 자신의 간절함을 신에게 전하기 위해, 자연에 더 가까워지기 위해, 병을 치료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그들의 짐은 모두 가벼웠다. 이전과 다르게 살려면 짐이 가벼워져야 할 테지. 내일 필요할지 몰라 쌓아놓은 나의 온갖 물건들은 어떻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