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에 태어나 97세를 향유했던 스페인의 첼리스트 거장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는 90대의 고령에도 매일 3시간씩 첼로 연습을 했다고 한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12년에 걸친 연구 끝에 완전한 모음곡으로 재해석한 연주가로 유명한 그는95세에도 매일3시간씩 연습하는 이유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저는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I’m beginning to notice some improvement. And that’s the thing that’s in me. I notice myself getting better at this.)”라고 대답했었다.
‘강지연의 백세시대’ 칼럼이 소개된 후, 멋진 노신사 한 분이 조이너스케어의 시니어 데이케어 (주간보호) 센터에 찾아오셨다. 칼럼을 읽고 이 젊은이가 누구인지 궁금하셨다며, 필자에게 플로리다 집 근처 해변에서 주우셨다는 예쁜 조개 껍질들을 선물로 주고 가셨다. 그 분께서는 “젊은 늙은이가 있고, 늙은 젊은이가 있는데, 나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것을 계속 하려는 희망을 가진 ‘Young Old’다”라고 본인을 소개하셨다. 또한, 이발소에 가실 때도 꽃을 들고 가신다고 하셨다. 대화하는 내내 소년 같은 눈빛으로 “실용성이 중시되는 사회(pragmatic society)이지만, 노인들이 대상이 아닌 주체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고 하셨다.
오랫동안 어르신들을 만나다 보니, 다양한 분들이 계시지만, 그 중 늘 주변에 무언가를 나누는 분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조이너스 케어의 방문간호/간병 서비스를 받으시며 시니어 데이케어에도 출석 중인 한 어르신은 90대 중반임에도 소녀 같은 수줍음과 애교가 넘치신다. 필자와 마주칠 때마다 손을 꼭 잡고 “하나님께서 어찌 이리 아름답게 만드셨을까. 기도하다 본부장님 얼굴 떠올리면 마음이 환해져요”라고 늘 칭찬하시고 고맙다고 하신다. 그 분이 작지만 힘있는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으시는 것이 나는 참 좋다. 우리 할머니께서 살아계셨다면 비슷한 연배셨을텐데, 부족한 사람을 존중하고 아껴 주시는 그 소중한 마음에 고마운 건 오히려 나인 것 같다.
한 어르신은 본인 또한 아픈 곳이 많은 노인인데도 다른 어르신께서 거동하는 것을 돕고, 눈에 띄지 않게 그 분들을 조용히 살피시고, 화장실까지 따라 가서 도와 주신다. 항상 너그러운 표정으로 양보하시고, 사사로움 없이 마음이 넉넉하시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82세가 된 부영그룹 이중근 회장이 순천 고향 마을 주민들과 초중고 동창 수백명에게 1명당 최대 1억원씩을 전달한 일도 있었다. 자신이 떠난 고향을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라고 하는데, 거액의 증여로 인한 세금을 공제한 후 전달했다는 것과 부영그룹이 현재까지 기부한 금액이 1조1천억원에 달한다는 것을 보면 오랜 세월동안 쌓아온 사회 환원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밤이 오는 것, 겨울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인생에서도 자연의 섭리를 잘 받아들이고 그때만 할 수 있는 있는 일을 해야 행복한 것 같다. 밤에는 왜 밤이 되었냐고 저항하기보다 밤에만 할 수 있는 것을, 겨울에는 겨울에만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밤은 사람의 그릇을 넓혀주는 시기다. 어르신들께서 지으시는 미소, 손을 잡고 등을 쓰다듬으며 격려해주시는 것, 인생의 지혜를 담은 말씀과 유머, 오랜 세월 쌓아 오신 것들을 나눔은 긴장이 가득한 이 사회에 큰 힘이 된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은 젊은이들의 생산적인 에너지에도 있지만 어르신들의 깊이 있는 나눔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