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밑 입술 위에 작은 부스럼이 생겨 없어지지 않고 시간이 갈수록 옆으로 번진다. 면도할 때 자극이 심해서 생겼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 면도칼을 쓰지 않고 전기 면도기를 한동안 써봤다. 그런데도 부스럼은 없어지지 않는다.
뷰티 써프라이에 가서 털을 피부 가까이 깎을 수 있는 머리 깎는 기계를 사다가 면도기 대신 써 봤다. 털들이 전기 면도기를 쓴 것 보다 약간 길었지만, 겉보기에는 흉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런데도 입술 언저리의 붉은 점들은 나아지지 않았다.
약방에 가서 상처 부위를 보여 주고 고칠 약이 없냐고 하니, 약사님은 내 얼굴을 보더니 습진이라고 하며 바르는 약을 주셨다. 아침 저녁으로 바르고 낫거든 고만 바르되 계속 낫지 않으면 병원에 가 보라고 하셨다. 약을 써보니 낫는 듯하다가 다시 붉은 점이 나타났다.
작은 아들이 모처럼 집에 왔을 때, 그의 음식 알레르기가 마음에 걸렸다. 그는 사과를 안 먹었다. 음식점에 가서도 음식에서 파가 있으면 파를 골라냈다. 땅콩 알레르기 때문에 난리를 치는 아이들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혹시 나의 습진도 음식 알레르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80 중반을 살면서 음식 알레르기가 없었는데? 혹시 전에 먹지 않다가 최근에 먹기 시작한 음식이 있는가? 아 있다. 매일 아침 먹던 호두 대신 최근에 피칸으로 바꾼 것이 원인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피칸 알레르기가 부스럼의 원인일 거야. 틀림없어!” 피칸을 당분간 먹지 않는 실험을 하면서, 그렇게 내 마음이 간절해져 갔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간절함, 제발 피칸이 문제의 근원이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병 치유를 바라는 간절함에, 안 먹으면 되는 방법이 쉽기 때문인 것 같았다.
다른 글에서도 쓴 적이 있지만, 아침 식사는 내가 만들어 먹는다. 71년 혼자 유학 와서 자취를 하면서 시작된 아침식사를 스스로 만들어 먹는 버릇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나름으로 많은 건강식 자료를 읽은 결과로 여러 해 동안 진화된 내 아침 식사다. 밥 몇 숟갈에 소금, 강황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 3분 마이크로 오븐에 끓인 죽에, 삶은 달걀 한 개, 브로콜리, 피망, 사과, 당근, 아몬드, 피칸, 얼린 체리, 토마토켓첩을 함께 섞어 먹는다. 채소 비빔 죽이다.
피칸을 먹지 않고 며칠이 지나도 부스럼은 낫지 않았다. 굳게 믿었던 가설은 무너졌다. 아내가 사온 냉동딸기 한 주머니를 버린다. 신문에 난 냉동딸기의 병균감염위험 경고를 읽고 의심이 나서 버린다. 문득, 냉동 체리가 내 피부습진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의심이 들었다. 그래 그러면 냉동 체리를 일주일 먹지 말아보자. 새로운 가설이 생겼다.
통풍을 앓고나서 재발을 막으려고 요산을 만드는 퓨린이 많은 음식들을 피하고, 도움이 된다는 체리를 찾다 보니 냉동된 체리를 발견하여, 매일 아침 식사에 5-6개의 체리를 먹었다. 조심한 탓인지 통풍으로 의사분을 만나 처방약을 먹고 나았지만, 통풍은 완치가 안되는 병이라 관리를 계속해야 된다고 했다. 관리하는 방법으로 퓨린이 없거나 적게 든 음식을 먹어서 인지 일년이 지나도 재발이 없었고, 체리도 그 음식 중에 하나다.
체리를 먹지 않은 3일째, 입 가에 부스럼이 안 느껴지고 가렵지도 않았다. 확실하다. 거울을 보면 부스럼 자리를 확인해도 부스럼이 없어졌다. 신기하다.
인터넷에 체리와 관계된 병을 찾아보았다. 영어에도 한글에도 있다. 체리혈관종(cherry angioma)이라는 병이다.
“마치 붉은 볼펜으로 점 찍어 놓은 것 같은 상처가 보이고 시간이 지나면 약간 위로 도드라진 모양으로 퍼지는 피부 병, 30대 이후의 남자들에게 생긴다.” 한 피부과 의사의 글이 내가 가진 증상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거 와 봐, 내 상처가 완전히 사라졌어!” 아내를 불러 말끔 해진 내 턱 주변을 보여 주었다. “붉은 점들이 안 보이네!” “병명이 체리혈관종이래.” “병이 나았으니 다행이네.”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땅콩을 피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겐 땅콩이 좋은 먹거리인 것처럼, 체리혈관종이 없는 분들에게는 체리가 맛있고, 보기 좋고, 영양가 높은 음식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간단한 것을 찾으려고 미로를 헤맨 행동이 어리석게 보인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라도 찾아 치유된 결과가 다행이라는 보상감정을 높여주는 것 같다. 고통이 클수록 회복되는 기쁨이 행복의 강도를 높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