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대법원이 6월 29일 대학입시에 있어 소수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몇년전 보수파 시민단체(Students for Fair Admissions)는 익명의 중국계 학생들을 내세워, 하버드대가 백인과 아시아계 입학지원자를 차별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대법원이 그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대학은 앞으로 대입과 입학 사정 때 지원자의 인종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 제도는 노예생활 및 차별로 인해 수백년 동안 고등교육 기회를 잡지 못한 흑인과 히스패닉 들에게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존F케네디 대통령이 처음 시행했다. 한국 대학입시로 친다면 농어촌 특별전형, 재외국민 특별전형, 장애인 특별전형 등과 비슷하다고 할수 있겠다.
이 제도가 60여년만에 폐지됨에 따라 최대 피해자는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유색인종협회(NAACP)의 데릭 존슨(Derrick Johnson) CEO는 “어퍼머티브 액션은 대학 교육기회를 갖지 못한 흑인들을 위해 존재했다”며 “대학교육 기회를 받지 못하면 취직 및 사회 진출의 기회가 줄어들어 흑인들의 삶의 질이 하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멕시코계 미국인 법률변호교육재단(MALDEF)의 토머스 사엔즈(Thomas Saenz) 법률고문도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시대를 역행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면 한인 등 아시안 이민자 학생들은 어떻게 될까. 일부 한인 이민자 학부모 들은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로 우수한 성적의 아시안 학생이 명문대 입학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동안 성적이 떨어지는 흑인, 히스패닉 학생들이 우수한 한인 이민자 학생들을 제치고 명문대에 들어가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로스쿨 입시를 겪어본 필자는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SAT 등 시험 점수로만 줄을 세운다면 앞으로 대학생의 절대다수는 백인이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백인 학생들은 아직도 정보력, 여건, 재산, 가족들의 지원 등 모든 면에서 다른 인종(한인 등 아시안)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필자도 로스쿨 입시를 준비할 때 LSAT 시험, 학자금 신청, 이력서, 자기소개서 등을 혼자서 준비해야 했다.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필자 주변에도 간단한 자기소개서(에세이)를 못써서 거액을 주고 입시전문가를 고용하는 한인 학생, 학부모들을 많이 봤다. 가족 가운데 법률 종사자가 있느냐는 질문 문항에 “No”라고 대답하면서 위축되기도 했다.
시험점수가 대학입시의 전부가 아니다. 로스쿨에 입학한 백인들 상당수는 변호사, 정부기관 관계자가 많았다.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이 제공하는 유형무형의 조언이나 정보는, 우리 한인들같은 이민자나 흑인들은 접하기 어려운 귀중한 것이다.
2세대, 3세대에 걸쳐 미국에서 산 가문의 재력과 영향력은 이민생활 몇년에 불과한 한인 이민자 가족들이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아시안아메리칸정의진흥협회(AAAJ) 아시안 법률연맹(Asian Law Caucus)의 아티 콜리(Aarti Kohli) 국장도 연방대법원이 어퍼머티브 액션의 역사적 의미와 현실을 무시하고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한다.
현재 하버드 학생의 30%이상은 이미 한인 등 아시아계가 차지하고 있다. 아시아계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 우수한 성적을 거둔 결과다. 그러나 ‘어퍼머티브 액션’ 이 사라진 이상, 이제 백인 학생들은 우수한 성적 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인맥과 지원, 자원봉사 등 갖가지 ‘스펙’으로 무장하고 입시에 나설 것이다. 반면 한인 학생들이 가진 것은 우수한 시험점수 말고는 없다. 그 결과는 한인 학생들의 손해다. 앞으로 한인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명문대에 떨어진 후, “가족들이 안도와준다”며 원망할지도 모를 일이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학생들은 한인 학생들의 적이 아니다. ‘어퍼머티브 액션’은 노예제와 인종차별이라는 불행한 미국 역사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앞으로 몇십년 후 쯤 흑인, 히스패닉, 한인들의 생활이 백인에 버금가게 된다면 ‘어퍼머티브 액션’은 폐지해도 괜찮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연방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액션’ 폐지는 매우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