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에 묻혀 소리없이 내리던 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가늘던 빗줄기가 금세 굵어지더니 바람마져 몰고와 창문을 깰듯이 두드리며 망난이 춤을 춰댄다. 우당탕 빨래 건조대가 바람에 날아가며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기세등등한 천둥과 번개를 뚫고 아침의 얼굴을 볼수 있으려나 은근한 걱정이 앞섰다.
나의 기우를 비웃기라도 하듯 희뿌연 어둠속에서 새벽의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간밤의 혹독한 비바람을 몸으로 받아낸 잔디위에는 패잔병 같은 나뭇잎들이 퍼런 구멍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나무들은 진하디 진한 물먹색으로 굳건하게 여명을 마주하고 있었고 우수수 떨어진 꽃잎들을 제물로 바치고 간신히 살아남은 패츄니아도 눈물같은 이슬을 머금고 찾아오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해가 서서히 어둠을 잡아먹더니 반투명 비닐의 장막이 거치면서 제 색을 찾아가는 잔디들이 가슴에 들어왔다. 역경을 헤치고 방금 자궁문을 열고 나온 아기처럼 말간 얼굴의 정원은 간밤의 불안을 씻어 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설레임을 안고 있었다. 갑자기 맨발로 잔디를 밟고 싶다는 충동을느꼈다. 유난히 색이 짙어진 잔디들이 눈부시다. 하지만 난 선듯 나서지 못하고 발바닥에 느껴질 차디찬 감촉만을 머리속으로 헤아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나를 산티아고 순례길로 데려갔다. 내 마음이 그 곳에 가 있기 시작한 건 1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마음만 먼저 보낸 것이 벌써 그리되었다. 삶의 한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난 그곳을 생각했다. 욕심과 분노와 질투로 가슴의 불덩이가 이글거릴때 산티아고의 가보지 못한 그 길을 마음속으로 걷고 또 걸었다.
맨발로 잔디를 밟는 것이 알몸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같은 불안함을 느끼게 하듯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낯설음과 발이 부르트게 걷는 고행의 순례길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두려움은 망설임으로 언제나 체증처럼 걸려 있었다.
그래서 일까… 거센 바람이 불거나 먹구름 가득한 장대비가 쏟아지는 밤이면 왠지 가슴 한켠이 시원해졌다. 변화무쌍한 날씨를 탓하며 가지 못하는 이유를 찾은듯 위로를 받기 때문일까… 아니 그보다는 거세고 험난한 길을 뚫고 지나면 전보다 더 짙어진 녹색의 정원을 만날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간밤의 거센 빗방울들이 파란 잔디위에 이슬로 수놓아져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나도 그 긴 비바람속을 헤쳐 나온 것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뿌듯함이 가득 채워진 정원은 신비로운 시공의 문을 열어 놓는다. 내가 미룬 10년을 원점으로 돌리며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어서 맨발로 땅을 밟으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듯 했다.
순례길을 그려본다. 컴컴한 새벽 어두운 길로 홀로 나서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이 지나면 밝아오는 아침의 푸르름이 펼쳐진다. 뜨거운 태양길에서 지나치는 순례자들을 만나면 나를 스쳐 지나간 인연들과 조우한다.
비내리는 질펀한 길에서는 힘들게 했던 지난 시간들을 버리고 간다. 오르막을 만나면 등에 얹혀졌던 짐들을 풀고 휴식속에서 욕망도 놓아버린다. 거센 바람을 마주 받으면 감사를 배운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가엔 소박한 꽃들과 마른 잔디가, 무심한 돌들과 세월을 머금은 나무들이 자리하고 있다. 잠시 앉아 하늘을 본다. 다시 길을 걷는다.
걷다 돌아보니 어느새 눈에 익은 정원이다. 가만히 발을 뻗어 잔디위에 놓아본다. 차갑고 시린 감촉이 낯설지만은 않다 어릴적 놀았던 흙바닥의 느낌과 비슷하다. 온몸에 닭살이 돋아났다. 그래 시작은 다 이런거야 하며 용기를 내본다. 한발 내딛어 본다. 그리고 또 한발 … 온몸에 짜릿한 전기가 오른다.
내년엔 산티아고의 그 길을 걷고 싶다. 낯설고 두려움이 주는 짜릿함을 안고 나를 찾아 떠나고 싶다. 문득 맨발로 디뎠던 잔디의 감촉에서 나 자신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독한 빗방울에서 아침 이슬을 보았고 부러진 가지에서 용기를 찾았다. 비바람을 몸으로 맞으면서도 제 색을 찾는 꽃들이 주는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이미 삶의 순례길을 걷고 있었나 보다. 우리 모두는 자기 몫의 순례길을 겸허히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침 우리 집 정원에서는 산티아고의 향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