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닝 테이블에서 레고를 조작하던 아이가 갑자기 부엌에서 일하는 나에게 와서 무슨 큰 일이 난 것처럼 소리쳤다. “할머니, 할머니 키가 줄었어요!” “엥?” 하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내 키가 준 것이 아니라 너의 키가 큰 것이지.” 답하고 아이와 부엌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전에 입던 바지들의 기장이 길어서 입지를 못하니 사실 내 키가 준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에는 굽이 있는 신발을 신었고 이제는 단화를 신으니 그런 가보다 했다. 하지만 아이의 지적을 받고 보니 무엇인가 아이의 눈에 띈 변화를 묵살할 수 없었다. 눈을 빤짝이며 내 표정을 지켜보는 아이에게 내가 골다공증이 있어서 몇 년 전부터 약을 먹고 있다고 한 것이 대화의 문을 열었다. 골다공증의 원인과 진전에 이어서 치료까지 설명을 하는 동안 아이는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6살 짜리 아이가 생로병사 인간사를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싶었지만 삶의 순환에 눈을 떤 아이와의 대화는 참으로 재미났다.
골다공증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된 아이는 사람들이 나이 들면서 마주치는 신체내부의 변화에 관심을 보이며 성인들이 가지는 여러 질환을 물었다. 그러다가 제 부모도 그런 질병을 가질까 봐 걱정을 했다. 눈에 보이는 부상과 주의해서 살펴야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증상들을 이야기하니 마치 3차원의 고강도 의료강의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의료 지식이 빈약해서 속으로 “제발 이제 그만 질문해라.” 하며 아이가 더 이상 질문의 고리를 이어가지 않기를 바랬다.
하지만 스폰지처럼 모든 지식을 흡수하는 아이를 보는 일은 신선했다. 어쩌면 아이는 내가 외면하고 사는 현실을 반사시키는 거울이었다. 어린아이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내가 그 나이였을 적에, 그리고 내 아이들이 그 나이였을 적에 전혀 다루지 않았던 주제들이 요즘은 보통이 되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이 아이들의 두뇌 성장도 초고속으로 유도하니 아이들의 성장속도가 너무 빠르다.
어린 손주는 우리 부부의 생활에 활력과 웃음거리를 준다. 며칠 전에 자기가 팬케익을 만들어 줄 테니 20불을 달라고 했다. 너무 비싸다고 불평하니 그럼 얼마를 줄 것이냐고 물어서 내가 가진 것이 1불밖에 없다 하니 좋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의 스케줄이 바빠서 아직 팬케익을 못 먹어서 내 돈 1불을 돌려달라고 했더니 환불은 안된다며 거절했다. 저녁에 딸과 페이스타임하며 팬케익 사건을 알렸더니 딸이 가족끼리 돈 받고 음식해주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 안되는 일이라며 아이를 나무랐다.
눈물을 글썽이던 아이가 실토했다. 워싱턴DC 다운타운 콘도에 사는 큰딸네가 아이 학교를 고려해서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에 집을 사서 이달 말에 이사한다. 큰 집으로 이사하면 가구도 많이 사야 하는데 돈이 필요해서 자기가 돕고 싶었다고 했다. 아무리 궁리해도 돈을 벌 수가 없으니 이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봉사하고 돈을 벌어서 부모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다고 하자 딸과 나는 입을 꽉 다물었다. 아이가 20불 달라고 할 적에 그냥 아이를 믿고 20불 줄 것을 잘못했구나 싶었다.
참으로 맹랑한 아이다. 이제 유치원을 마친 아이가 그 작은 머리속에서 제 부모를 도우려는 발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이의 속 깊은 생각은 그저 넓은 남부 시골에서 뛰고 놀면서 즐겁게 여름방학을 보내기를 바랬던 할머니를 무안하게 했다. 그리고 냉장고 한쪽에 작은 파우치를 넣어 놓고 맛있는 간식이 있으면 조금 떼어서 나중에 엄마에게 준다며 모으는 아이는 자식 많은 딸에게 주려고 과자를 모았다가 주시던 내 할머니를 그리워하게 했다.
“내 키가 계속 줄어들어 훗날 나는 난장이 나라의 사람이 되면, 너는 쑥쑥 자라서 너의 아버지처럼 6피트가 넘는 청년이 될 거야. 그때는 내가 너를 올려다 봐야 할까?” 했더니 아이가 재밌다고 키득키득 웃었다. 그리고 자기는 할머니를 내려다 보지 않고 의자에 앉아서 마주보면 된다고 해결책을 냈다. 몸과 감정은 어려도 머리는 성숙한 아이와 보내는 소중한 순간은 내 의식을 앞으로 전진시켜서 고인 물이 안되도록 도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