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에서 ‘바벤하이머’ 열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바벤하이머’란 21일 동시에 개봉한 두 할리우드 영화 ‘바비’와 ‘오펜하이머’를 조합한 말이다.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는 정반대 성격의 두 영화가 같은 날 개봉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온라인상에서 두 영화 포스터와 캐릭터를 결합한 ‘밈’이 유행하는 등 최근 뜨거운 화제 몰이를 하면서 이례적인 동반 흥행이 점쳐지고 있다.
전미극장주협회(NATO)는 전날 성명에서 “우리의 추산에 따르면 북미에서 2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바비’와 ‘오펜하이머’의 흥미진진한 동시 개봉일에 두 영화를 모두 즐길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번 주말(금∼일요일) 동안 서로 다른 날에 두 영화를 연달아 볼 계획인 관객도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매 추이 등을 토대로 흥행 실적을 전망하는 매체 ‘박스오피스 프로’는 개봉 첫 주말 수입으로 ‘바비’가 1억4천만∼1억7천500만달러(약 1천805억∼2천256억원)를, ‘오펜하이머’가 5천200만∼7천200만달러(약 670억∼928억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두 영화를 합치면 2억달러(약 2천578억원) 이상의 티켓 수입으로, 실제로 이뤄질 경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한 이래 극장가의 주말 최대 실적이 된다고 CNN 방송은 전했다.
CNN은 “‘바벤하이머’ 열풍이 할리우드에서 몇 년 동안 보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바벤하이머’로 두 영화를 조합하는 밈 놀이는 이들 영화의 성격이 극명하게 다르다는 점에서 기인했다.
분위기가 대비되는 영화 ‘오펜하이머'(왼쪽)와 ‘바비'(오른쪽) 포스터. 트위터 캡처
‘바비’는 유명한 바비 인형을 소재로, 주인공 바비가 이상적인 ‘바비랜드’를 떠나 현실 세계로 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경쾌하게 그린 영화다.
할리우드에서 배우·감독·작가로 다재다능하게 활약하는 그레타 거윅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페미니즘과 현실 풍자를 가미하긴 했지만, 분홍빛이 주를 이루는 밝고 화려한 이미지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반면 ‘오펜하이머’는 우주와 인간의 뇌 구조 등 심오한 주제를 대작으로 만들어온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으로,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를 기반으로 한 영화다.
인류 최초의 핵무기 개발 계획과 과학자들의 야망과 철학 등을 다룬 어둡고 진지한 작품이다. 상영시간도 3시간에 달한다.
두 영화의 동시 개봉을 두고 소셜미디어 등에는 인형 같은 외모의 주연배우 마고 로비가 분홍색의 화려한 의상을 입고 찍은 ‘바비’ 포스터와, 핵폭탄이 투하된 장면을 배경으로 주연배우 킬리언 머피가 어두운 얼굴로 서 있는 ‘오펜하이머’ 포스터를 합성한 이미지 등이 퍼지면서 ‘바벤하이머’란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두 영화의 조합에 대해 “코미디 대 드라마, 인간 상상력의 가장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세계를 창조하는 것과 파괴하는 것의 대비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라고 평했다.
두 영화의 각 투자배급사는 당초 다른 관객층을 겨냥해 경쟁을 의식하지 않고 같은 날 개봉을 결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뜻밖에 두 영화의 조합이 인기를 끌면서 “둘 다 보겠다”는 관객들이 늘어나는 양상이다.
마이클 오리어리 전미극장주협회장은 “사람들은 극장에 가서 흥미진진한 문화 현상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고 있다”며 “이 두 영화가 앞으로 몇 주 동안 계속해서 팬들을 끌어모을 것”이라고 CNN에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