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폰의 역사를 생각하면 웃음이 먼저 난다. 1989년도 일이니 꽤나 오래된 기억이다. 퇴근한 남편이 들어오지 않고 나를 밖으로 불러 냈다. 승용차에 내 키 만한 안테나가 달려서 바람에 흔들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있었다. 차 안에는 지금의 집 전화보다 큰 검은색 전화기가 하나 달려 있었다. 카폰이었다. 내게 자랑하고 싶었던 남편의 표정이 생각나서 웃었다. 이것이 내 기억의 첫 번째 셀폰이다.
어릴 때 집에 전화기가 처음 들어온 날, 가느다란 줄을 통해서 멀리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의 놀라움이 생각난다. 어린 나에게는 요술상자처럼 느껴졌었다. 친구들과 종이컵에 줄을 연결해서 놀이를 하는 것과는 다른 믿기지 않는 현실이었다. 전화기 속에 사람이 숨어 있는 건 아닌지 보고 또 보았던 기억이다. 그 이후에 등장한 셀폰은 획기적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신비스러운 신세계였다. 목소리를 연결시켜 주는 선 마저 없어졌다는 것이 내 상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문명이었다.
셀폰은 휴대폰 혹은 휴대전화라고도 부른다. 셀룰러 전화(cellular phone, cell phone)라는 명칭은 이동전화를 위한 이동통신망인 셀 네트워크(cellular network, 세포망)에서 유래한 명칭이라고 한다. 오늘날 내가 사용하고 있는 셀폰이 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많은 과정 속에 내 나이만큼의 세월을 함께 지나오며 셀폰의 역사를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내가 경험한 다양한 모양과 기능의 셀폰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이다. 벽돌폰, 안테나를 뽑아서 사용했던 플립폰, 사이즈가 한층 작아진 폴더폰, 폴더를 열고 화면을 가로로 돌려서 사용하는 폰, 다양한 목줄과 함께 많은 직장인들이 목에 걸고 다녔던 슬라이드 폰, 현재의 스마트폰까지 셀폰은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그 과정과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내가 경험했던 에피소드만큼 많은 일화가 숨어 있을 것 같다.
셀폰의 탄생과 변화하는 과정을 함께한 우리 세대는 이야깃거리가 많다. 그 시절로 돌아가 이야기보따리를 풀다 보면 끝이 없다. 카메라 기능이 생기고 사진 파일을 전송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문화가 생겼던 젊은 시절도 떠오른다. 화질이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지만 바로 보낼 수 있다는 편리함은 연인들에게 새로운 소통이 되기도 했었다. 문자 한 통에 추가 요금을 내야 해서 꼭 필요한 문자만 보냈던 일, 정해진 숫자 이상의 문자를 저장할 수 없어서 어느 것을 지워야 할지 읽고 또 읽으며 고민하던 일, 몇 안 되는 전화 벨소리를 선택할 수 있을 때 신났던 일도 생각난다.
그때는 단순한 기능에 간단한 디자인이었지만 튼튼했다. 고장이 나거나 싫증 나서 못쓰는 일도 거의 없었다. 볼록하게 나와있는 숫자판을 꼭꼭 누르던 재미도 있었다. 느리고 투박했지만 소중하고 귀한 물건이었다. 그에 비해 지금의 폰은 너무 많은 기능들을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우리가 활용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다. 하지만 나는 많은 기능들과 빠른 편리함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얻는 것보다 더 많은 인간적인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셀폰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폰 없이 살라고 하면 상상이 안 될 만큼 우리에게 깊숙한 일상이 되어있다. 삶의 너무 많은 영역을 폰은 관여하고 있고 우리는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이 사람에게 집중하며 관심을 주는 당연한 일들을 잃어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사람의 말보다는 기계의 정보를 더 신뢰한다. 먼저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삶의 지혜를 듣고 배우며 이어가던 끈끈함도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가 기계와 소통하며 살아가는 시간들이 많아질수록 사람과는 멀어지는 느낌이 든다. 요즘은 어디에서나 폰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모습이 흔한 풍경이 되어있다.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나누는 따뜻하고 즐거운 순간들이 줄어들고 있다는 현실이 슬프다. 가장 가까운 사람과 주고받아야 할 삶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점점 기계에 길들여져 가고 있다.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산다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끝없는 노력은 해야 할 것 같다.
“여보! 우리 손잡고 가까운 미술관 나들이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