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팔 사제복을 입은 여성이 미소를 띠고 있다. 최근 영국 잉글랜드 성공회 캔터베리 대성당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이다. 새로 부임한 웬디 달림플 사제를 소개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곧 논쟁이 벌어졌다. 달림플 사제의 두 팔을 뒤덮은 타투(tattoo·문신) 때문이다. 사진엔 댓글이 1000개 넘게 달렸다. “성직자에게 타투는 부적절하다”는 주장과 “개인의 자유”라며 사제를 지지하는 의견이 맞섰다.
논란이 커지자 달림플 사제가 직접 나서 “나의 소명과 신앙을 표현한 타투”라고 설명했다. 캔터베리 대성당도 “외모에 대한 모욕을 용납할 수 없다”며 그를 옹호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각에선 “보기 거북하다”며 사제직 박탈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전 세계 ‘타투 인구’ 급증…英 특정 직업엔 “안돼”
세계 각국에서 ‘직장인 타투’가 논란이다. 직종·직업에 따라 타투 노출을 두고 고용주와 근로자, 고객 간에 크고 작은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들어 타투를 드러내는 직장인이 많아졌다”며 “직장에서의 타투가 전환점을 맞았다”고 전했다.
세계적으로 ‘타투 인구(영구 문신 경험자)’는 증가세다. 미국 여론조사업체 입소스는 전 세계 약 2억2500만 명이 타투를 지니고 있다고 추정했다. 미국인 중 타투 인구의 비율은 지난 2012년 21%에서 지난해 30%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확산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와 관련 깊다. 미 시장조사업체 와이펄스는 “MZ세대는 과거 비주류 문화였던 타투를 ‘자기 관리’의 도구로 삼으면서 주류 문화로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타투 인구가 늘어난다고 직장인 타투에 관대한 분위기라고 단정하긴 어렵다. 지난해 7월 영국인 2224명을 상대로 한 유고브의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타투 노출을 허용할 수 없는 직종’을 교사, 승무원·호텔리어, 의사·간호사, 경찰 등의 순으로 꼽았다. 타투에 상대적으로 관대한 서구 사회도 특정 직업은 문신 노출이 적합하지 않다는 통념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항공사들은 전통적으로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의 타투 노출을 금지해왔다. 그러나 타투를 한 젊은 승무원이 크게 늘어나자 항공사 측의 고민이 커졌다. 대 응 방식은 회사에 따라 다르다. 미 최대의 저가 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항공은 올 초 드러나는 신체 부위에 타투를 한 신입 승무원들을 해고했다고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은 지난해부터 승무원들에게 유니폼 밖으로 보이는 타투를 허용했다. 버진애틀랜틱 홈페이지 캡처
반면 유나이티드항공은 지난 2021년 미 항공사론 처음으로 “유니폼 밖으로 보이는 타투를 허용한다”고 내부 규정을 바꿨다.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은 지난해, 뉴질랜드 항공사 에어뉴질랜드는 지난 2019년 타투 노출 금지 규정을 없앴다. 최근 미 아메리칸항공 승무원들도 회사 측에 타투 노출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FT에 따르면 서비스 업계와 달리 일반 기업은 직원들의 타투 노출을 금지하는 명문화된 규정이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매체는 “대신 일부 회사들은 눈에 띄는 타투가 있는 지원자를 면접 과정에서 조용히 탈락시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유니폼 밖으로 타투를 보이고 있는 버진애틀랜틱 승무원들. 버진애틀랜틱 홈페이지 캡처
中 ‘타투 해고’ 논란…日 자위대 입대 허용 검토
아시아에서도 타투 인구가 늘면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5월 중국의 한 공장은 팔에 문신이 있는 청년에게 채용 취소를 통보했다.
공장 사장은 채용을 취소한 이유로 “문신이 회사 문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소셜미디어에선 “명백한 차별”이란 비판과 “문신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사장도 고용의 자유가 있다”는 의견이 함께 나왔다. 중국 당국은 “저속하다”는 이유로 방송에서 문신 노출을 금지하고 있다.
지난 5월 중국의 한 공장 사장이 팔에 문신이 있는 채용 예정자를 지적하는 모습이라며 중국 소셜미디어에 번진 영상. 웨이보 캡처
변화의 기류도 감지된다. 일본 방위성은 타투를 한 사람에게도 자위대 입대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에선 조직폭력배인 ‘야쿠자(ヤクザ)’의 영향으로 문신한 사람의 목욕탕 출입을 금지할 만큼 문신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편이다.
일 방위성도 그간 ‘품위’를 이유로 신체검사에서 문신한 사람은 탈락시켰다. 하지만 타투 금지가 가뜩이나 신병이 부족한 자위대의 구인난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따라 ‘문신 금지’ 지침을 변경하려 하는 것이다.
미 공군과 영국 런던 경찰도 지원자를 늘리기 위해 이미 관련 규제를 풀었다. 한국은 2021년 문신을 이유로 현역을 면제했던 병역 검사 관련 규정을 폐지했다. 과거엔 문신이 있으면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으나 현역 입대가 가능해졌다. 인구 감소로 현역병 자원이 줄어드는 현실, 문신 규정을 병역기피 목적으로 악용하는 사례 등을 고려했다.
일손 부족 ‘타투 MZ’ 배제 어려워
외신들은 타투 허용 추세가 여러 직종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코로나19 팬데믹 후유증과 저출산의 영향으로 일손이 부족한 상황에서 문신을 이유로 배제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의 몇몇 항공·레저 회사들이 타투 규제를 완화한 것 역시 이런 속사정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미국 CNBC는 “근로자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타투를 허용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문신 법안 관련 공청회 자료 등에 따르면 한국에서 영구 문신을 경험한 이들은 약 3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선 의사가 아닌 사람의 문신 시술은 불법이다. 하지만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문신 경험자 171명 중 1명(0.6%)만이 의사에게 시술받았다고 답했다. 대부분 비의료인에게 시술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지난달 2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합법화하자는 ‘타투업법’ 관련 논의가 첫발을 뗐다.
임선영(youngc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