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전화 한통이 남편과 나의 평화를 깨뜨렸다. 남편과 가까이 지내는 친구의 12살 손녀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에 우리 부부는 아연실색했다. 남부 토박이 집안의 그 아이는 많은 가족 친지들에 둘러 싸여서 세상아 나 여기 있어 하고 행복하게 살던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일어난 변화를 가족친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더욱 자살은 전혀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갑작스런 이이의 죽음은 모두에게 진정 청천벽력 같은 뉴스였다.
작년인가 뉴요커 잡지에서 어린아이들의 자살 기사를 읽었을 적에 섬뜩했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뭔가 아득한 거리를 가진 뉴스였다. 그리고 세상사에 시달린 성인이 아니라 아직 한창 자라는 아이들이 숨막혀 하는 상황을 벗어나려고 자살을 선택하는 숫자가 급증한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웠다. 사회가 험악해 가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할 환경을 마련해 주지 못하고 아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솔직히 내 가족친지 중에 자살한 사람이 없고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의 삶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어린아이 자살 건은 나에게 낯선 뉴스였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7월23일 타임즈 잡지에서 가족 멤버의 자살로 영향을 받은 아이들을 위한 CZC (Comfort Zone Camp)가 여러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며 감사했다. 가족의 자살과 상실을 겪은 충격을 아이들이 서로 위로하고 위로 받으면서 함께 이겨내려고 노력한다는 기사는 가슴 아프고 반가운 소식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못한 절절한 아픔이, 갑작스런 가족의 죽음으로 무너진 세상의 파편들 속에서 일상을 사는 고통을 아이들이 미처 성인이 되기 전에 체험하는 것이 안스러웠다.
그렇게 지나가는 바람으로 읽은 아픈 사연들이 이번에 12살 지인의 손녀로 인해서 내 의식을 꽉 눌렀다. 옆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만들고 있는 손주를 보면서 사랑스런 손녀를 잃은 끔찍함을 견디는 지인부부의 아픔을 느끼니 가슴이 내려앉았다. 한 아이의 걱정거리나 우울증을 전혀 몰랐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바로 내 이웃이었다. 나이든 사람이나 지병으로 오랫동안 고통받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크게 아프지 않고 받아 들이지만 어린아이의 죽음은 당혹스럽고 힘든다. 교통사고나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해도 가슴을 치고 안타까울 나이인데, 그 어린 손으로 직접 자신을 파괴시킨 것이 큰 충격이다.
길 잃은 어린 영혼의 장례미사를 집전하러 모빌에서 온 그 아이를 잘 아는 신부님은 성전에 앉은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죄책감을 가지지 말라고 하셨다며 장례미사를 본 남편은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친구의 장례미사에 참석해서 우는 아이들을 힐끔힐끔 쳐다봤다는 남편은 그의 마음을 나와 나누지 않았지만 짐작은 갔다. 하지만 오늘이 어제 같은 이 한적한 남부 작은 도시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더구나 많은 가족 친지들의 사랑에 둘러 쌓인 아이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다. 무엇보다 어린 아이가 단호하게 자살을 실천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준다.
사실 12살이면 사춘기로 들어서는 변화기다. 아직 어린아이의 사고를 가졌고 무엇이든 흰색과 검은색으로 나누며 사물을 직역으로 받아들이는 단순한 1차원의 세계를 가진 천진난만한 상황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린아이에서 청소년으로 육체적 정신적인 성장을 시작할 나이이지 삶을 마감할 나이가 아니다. 인생을 논할 나이가 아니다. 무엇이 그 나이의 순수함을 앗아간 것일까?
앞으로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아이가 버린 길이 안개속에 잠겼다. 미래를 포기하고 떠난 아이는 그녀의 성장기를 기록한 사진들 속에서 환하게 웃는 행복한 모습으로 멈추어서 남아있는 사람들을 아프게 한다. 처음 아이의 죽음을 발견한 사춘기 오빠가 받은 상처도 엄청날 거다. 그리고 이제 곧 개학하면 그 아이가 비운 자리를 지켜볼 친구들의 학교생활도 어둡게 시작될 터이다. 아이의 자살 파장이 알게 모르게 천파만파로 번져 모두에게 영향을 줄 것을 아이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앞으로 내 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무섭게 지켜보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하느님이 따스한 축복으로 길 잃은 어린아이의 영혼을 거두어 주시고 그녀를 잃고 고통받는 가족을 보살피고 위로해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