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18)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고, 한 달 을 행복하려면 말을 사고, 한 해를 행복하려면 집을 짓고, 평생을 행복하려면 정직하라는 영국 속담을 안다. 알지만 인정하기 힘든 속담이다. 이발을 해주는 이발사가 정직하지 않다면, 결혼한 배우자가 정직하지 않다면, 지금 믿을 수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다면…. 정직은 나 혼자 거짓되지 않다고 행복해지는 가치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하는 약속이다. 서로 협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정직이기에 정직은 인류 최대의 생존능력이다. 행복한 삶을 위해 내가 정직해야하듯이, 타인의 정직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어릴 때 들었던 피노키오나 양치기 소년, 또 어린 조지워싱턴의 도끼 이야기는 정직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한 이야기들이다.
미국의 데미 작가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나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아시아 문화에 관심을 가져 인도와 중국을 소재로 여러 이야기를 썼다. 〈The Empty Pot〉는 중국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데미 작가만의 섬세한 그림과 글로 만든 그림책이다.
옛날 중국에 모두가 꽃을 사랑하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의 늙은 왕은 후임자를 찾기 위해 모든 아이들을 궁으로 불러 특별한 꽃씨를 준다. 일 년 뒤 꽃을 가장 잘 피워온 아이에게 왕위를 주겠다고 한다. 꽃을 사랑하는 아이들 중에서도 꽃을 유난히 사랑하는 핑이라는 소년도 꽃씨를 받아와 정성껏 가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핑의 꽃씨는 자라지 않는다. 한 해가 지나 아이들은 예쁜 꽃이 핀 화분을 들고 궁으로 모여든다. 빈 화분을 보며 부끄러워하는 핑에게 아버지는 “너는 정성을 다했단다. 너의 정성이 좋은 선물이란다.”하고 위로해 준다.
얼굴을 찌푸린 채 아름다운 꽃들을 둘러보던 왕은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는 핑에게 왜 빈 화분을 가져왔는지 묻는다. 핑은 아무리 노력해도 꽃이 피지 않았다고 사실대로 대답한다. 핑의 대답을 들은 왕은 핑의 용기와 정직을 칭찬하며 핑을 후계자로 뽑는다. 사실은, 왕이 나눠준 씨앗은 모두 익힌 씨앗이라 싹을 틔울 수 없는 씨앗이었다.
정직한 대답 하나로 왕위를 물려줄 왕은 세상에 없겠지만, 왕의 거짓말이 핑의 정직한 대답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한다. 나라 안에 정직한 사람이 얼마나 없었으면, 이런 실험을 했을까.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였다면 빈 화분을 가져온 아이가 절반은 넘어야 했을 텐데. 부모님이 입혀주신 좋은 옷을 입고 즐거운 얼굴로 무거운 화분을 들고 궁으로 가는 많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의 화려한 꽃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예쁜 꽃에 주어지는 상이 왕위가 아니라 왕사탕쯤으로 알고 가는 건 아닐까. 책을 다시 읽어도 꽃을 피우지 못하면 벌을 내린다는 내용은 없는데 모두들 꽃을 피우려 애쓴 것을 보면 왕의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부모의 가르침도 있었을 것이다.
정직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성격이라는 주장도 있고, 사회적 관계와 교육으로 배우는 가치관이라는 주장도 있다. 성격이든 가치관이든 아무리 정직한 사람이라 해도 거짓말을 아예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해야만 하는 거짓말이라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은 하고 살자며 ‘하얀 거짓말’이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에 처한 사람을 구하고 싶어서,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거짓말을 하며 산다. 이런 하얀 거짓말을 못하는 사람을 사회성이 떨어지는 사람, 답답한 사람이라고 흉보기도 하면서.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는다고 하는데, 역사가 길고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거짓말 기술도 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인터넷과 같은 통신기술로 파급력도 점점 늘고 있다.
거짓말 기술이 발달할수록 거짓은 참과 구분하기 어렵다. 일상에서 인공지능의 활용이 늘면서 딥페이크 기술이 문제이다. 인간의 생각을 읽고 모방하는 수준을 넘어 정교한 합성기술로 거짓 영상을 만들어 거짓말을 하는 인공지능은 어쩌면, 나도 하얀 거짓말을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