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카롤라 폭포서 8.5마일
전국의 하이커들 찾는 명소
비포장도로 따라 차로 가면
산정 트레일헤드에선 1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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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남북으로 3개의 큰 산줄기가 뻗어있다. 동부 대서양 쪽은 애팔래치아 산맥, 서부 태평양 쪽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 그리고 중서부의 로키산맥이다. 이들 산맥을 따라 남북으로 이어지는 하이킹 트레일이 있다. 미국의 자랑이자 3대 장거리 트레일로 불리는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 2190마일),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acific Crest Trail, 2650마일), 콘티넨털 디바이드 트레일(Continental Divide Trail, 3028마일)이 그것이다.
전문 하이커들에겐 이중 어느 하나라도 종단해 보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어느 한 곳도 완주하기가 쉽지 않다. 걷는 기간만 해도 몇 달씩 걸릴 뿐 아니라 그만한 시간과 체력을 갖추기도 쉽지 않아서이다. 그럼에도 3개 구간 모두 완주했다는 ‘철인’이 가끔은 나온다. 그들을 ‘트리플 크라운’이라 부르는데 한국인 중에도 대여섯 명이나 된다고 한다.
애팔래치안 트레일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
3개 트레일 중 조지아 한인들에게 친숙한 곳은 애팔래치안 트레일(이하 AT)이다. 남쪽 시작점이자 북에서 내려온 마지막 종점이 조지아주 아미카롤라 폭포 인근 스프링어 마운틴(Springer Mountain)이기 때문이다.
조지아에서 시작한 AT는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버지니아, 웨스트버지니아, 펜실베이니아, 뉴저지,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버몬트, 뉴햄프셔를 지나 미국 최북단 메인주 마운트 캐터딘(Mount Katahdin)까지 이어진다. 모두 14개 주에 걸쳐있는 이 길은 미국 작가 빌브라이슨의 베스트셀러 ‘나를 부르는 숲’의 소재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그 때문에 AT를 걸어보겠다고 한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저 주말 산행이나 즐기는 우리 같은 사람은 그 정도는 아니어도 집 가까운 일부 구간이라도 걸어 보는 것으로 기분은 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조지아 사람은 그 유명한 트레일 종점이 마음만 먹으면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곳에 있으니 그게 또 조지아 사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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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팔래치안 트레일의 조지아 구간은 약 78마일이다. 트레일이 시작되는 스프링어 마운틴 정상은 해발 3782피트로 블루리지 산맥의 일부다. 멋진 풍광과 잘 닦여진 등산로로 원래도 유명했지만 1959년에 이곳으로 AT 종점이 옮겨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원래 종점은 트레일이 처음 완공된 1937년부터 1958년까지는 현재의 위치에서 13마일 떨어진 마운트 오글소프(Mount Oglethorpe) 인근에 있었다.
스프링어 마운틴은 블루리지 산맥의 일부다.
스프링어 마운틴 정상으로 가는 길은 여러 경로가 있다. 아미카롤라 폭포에서 출발하는 것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왕복 거리가 16마일이나 되어 당일치기로는 무리다. 하지만 AT 장거리 하이킹에 도전하는 많은 이들이 아미카롤라 폭포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AT 시작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참고로 폭포에서 스프링어 마운틴까지 가는 길 이름은 애팔래치안 트레일이 아니라 ‘애팔래치안 어프로치 트레일(Appalachian Approach Trail)’이다.
비포장도로 산길
좀 더 쉽게 찾아 가는 방법은 스프링어 마운틴 트레일 헤드까지 차로 가서 올라가는 것이다. 그곳에선 남쪽으로 왕복 2마일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누구든 가볍게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맛볼 수 있다. 대신 트레일 헤드 주차장까지 울퉁불퉁 꼬불꼬불 비포장 흙길을 1시간 정도 차로 올라가야 한다. 비포장 길이라 사륜구동 SUV가 좋겠지만 일반 승용차도 못 올라갈 정도는 아니다.
스프링어 마운틴 트레일 헤드
스프링어 마운틴 트레일 헤드 3마일 전에 있는 벤톤 맥카예(Benton MacKaye) 트레일 헤드에서도 올라갈 수 있다. 이곳에서 AT 종점까지는 약 5마일 루프 트레일이다. 벤톤 맥카예(1879~1975)는 애팔래치안 트레일 조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낸 사람이다.
#. 주말 아침 찾아간 스프링어 마운틴 트레일 헤드엔 9시 조금 넘었는데도 30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벌써 차가 10여대나 있었다. 서둘러 차를 세우고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걸었다. 길은 걷기 편하게 돌계단도 곳곳에 있고 질펀한 흙길도 단단하게 다져져 있었다. 폭우에 대비한 배수 물길도 곳곳에 보였다. 배수로는 아직 흙이 덜 마른 상태여서 비교적 최근에 누군가가 공들여 파놓은 것이 분명했다.
언젠가 조지아 한인 산악회원들이 애팔래치안 트레일 일부 구간을 맡아 정기적으로 유지 보수 봉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이곳이 그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땀과 수고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산행을 할 수 있구나 싶어 보이지 않는 손길이 새삼 고마웠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연방법에 따라 관리되지만, 유지 보수는 대부분 자원봉사자에 의해 이뤄진다. 자전거나 자동차, 말은 다닐 수 없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일정 거리마다 하얀색 표시가 되어 있다. 화이트 블레이즈(White Blazes)라 부르는 이 표시는 가로 5cm, 세로 15cm 크기로 나무나 바위 등 트레일 곳곳에 칠해져 있어 이 표시만 잘 따라가도 길 잃을 염려는 없다. 간혹 파란색 표시(Blue Blaze)가 된 샛길도 나오는데 이는 정식 트레일에서 벗어난 우회로를 가리킨다. 끝에는 보통 셸터(Shelter)나 물이 있는 샘터, 경치 좋은 전망대 등이 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 일정 간격으로 나무나 돌에 흰색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파란색 표시는 셸터나 캠프사이트, 전망대 등으로 빠지는 샛길이다.
스프링어 마운틴 정상 부근에도 파란색 표시가 칠해진 샛길이 보여 따라가 보았다. 통나무 오두막집이 있는 셸터였다. 곰이 훔쳐 먹지 못하도록 음식을 지켜주는 철제 박스, 야외 화장실, 졸졸졸 개울이 흐르는 작은 샘터도 흥미로웠다. 장거리 하이커들이 하룻밤씩 묵고 가는 이런 셸터가 애팔래치안 트레일 전 구간에 260여개나 있다고 한다.
애팔래치안 트레일 셸터. 개방형 통나무 집으로 내부는 2층으로 되어 있다.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야생 곰의 도둑질에 대비해 만들어 둔 음식 보관 박스.
셸터 안에는 하이커들이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노트와 볼펜을 넣어둔 둥근 통도 신기했다. 통을 열고 노트를 꺼내보니 트레일을 걸으며 느낀 소회를 적어놓은 글들이 빼곡했다. 누가 읽을지 모르겠지만 나도 한글로 몇 자 소감을 적어 보았다.
셸터 안에는 하이커들이 기록을 남길 수 있도록 이런 노트와 펜이 비치돼 있다.
정상 부근에선 커다란 배낭을 머리 높이만큼 지고 걸어오는 하이커 2명을 만났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마주 서서 인사를 나눴다. 아미카롤라 폭포에서 출발해 중간에서 하루 자고 이틀째 걷는 중이라 했다. AT 완주가 꿈이긴 하지만 이번엔 조지아에서 노스캐롤라이나까지 1주일만 걸을 거라고 했다. 그들의 장도를 응원하며 사진 한장 찍자 하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 주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걷는 하이커들. 이들은 일주일간 노스캐롤라이나까지 갈 예정이라고 했다.
셸터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길을 나서는 젊은이들. 셸터가 ‘베리 나이스’였다고 했다.
산 정상엔 사진으로 자주 봤던 동판 2개가 있었다. 하나는 애팔래치안 트레일 남쪽 종점(Southern Terminus)이라고 씌어 있는 공식 동판, 또 하나는 조지아 애팔래치안 클럽에서 만들어 놓은 기념 동판이었다. 짧은 구간이지만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밟아 본 기념으로 나도 사진을 찍었다.
조지아에서 메인까지. 애팔래치안 트레일 기념 동판. 조지아 애팔래치안 클럽, 1934년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미국 동부에 사는 사람은 크게 두 부류가 있다고 한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걸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것이다. 이로써 나도 이제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걸어본 사람이 되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 남쪽 종점(Southern Terminus) 표시 동판 옆에 선 필자. 스프링어 마운틴 해발 3782피트, 채터후치 국립 삼림, 1993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메모 : 달로네가에서 스프링어 마운틴 트레일 헤드까지는 차로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GA Hwy 52를 타고 가다 Nimblewill Church Rd.를 만나 우회전, 다시 Forest Service Rd 28-1(여기서부터 비포장도로)을 만나 또 우회전하면 된다. 비포장도로는 Winding Stair Rd→Forest Service Rd 42-3 순으로 따라가면 된다. 산행 전후 달로네가 다운타운에 들러 보는 것도 좋다. 19세기 초 금광 개발로 이름을 떨친 관광도시라 여기저기 볼거리가 많다. 주변에 와이너리도 유명하다.
글·사진=이종호 애틀랜타중앙일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