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강렬히 내리쬐는 태양이 매섭다. 밤이 되면 나아지려나 했는데 열대야가 더 문제가 된단다. 숨을 곳이 없다.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자연의 섭리인 걸까, 난 그저 제자리를 지키며 살았는데 오늘날 재난이라 부르는 폭염의 태양아래 서 있다.
뉴스에서는 연일 더위로 인한 심각성을 보도하고 있다. 수백마리 돌고래떼가 해변으로 몰려와 집단폐사를 했고 그리스의 산불은 꺼지지 않고 타올라 군 탄약고를 터뜨리며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다. 유엔에서는 지구 온난화시대는 가고 열대화시대가 도래했다고 공식적인 우려를 발표했다.
뉴스를 보지 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눈을 감는다고 올 것이 비켜가지는 않는다고 단지 앞 호수가 말해주고 있었다.
평소 드나드는 정문앞 호수의 분수는 여름에는 갈증을 풀어주고 겨울에는 운치를 더해주며 여유를 주곤 했었다. 그런데 언듯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는 호수의 끝자락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시퍼런 녹조와 허옇게 낀 부유물로 가장자리가 심하게 부패되고 있었던 것이다.
시원한 분수의 물줄기가 뿜어지고 있었는데도 순환된 물들이 미처 가기도 전에 강렬한 태양빛은 그곳을 먹어치워 버린것이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가진 태양은 주변의 모든 것을 삼키고 망가뜨려 활력을 빼앗아 가버렸다. 마치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 우리네 모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녹여버린 신이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계속해왔다. 관개 시설을 만들고 집을 지었으며 가축을 사육하는 등 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그 노력은 생존이 아닌 경제적 부나 권력을 위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것들은 혁신을 표방하는 기치를 내걸고 온 지구를 들쑤시고 있다.
배기가스는 온난화를 가속화시켰고 몇십 핵타르씩 아마존의 푸른 밀림이 베어져 나가고 아름다운 해변은 플라스틱 쓰레기 산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바닷물이 뜨거워지면서 산호초들이 죽어나가고 더불어 물고기들도 사라져 가고 있다. 하늘에 보이는 하얀 띠구름은 날씨를 조정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흔적이라는 유언비어가 성행하고 지진대가 아닌 곳에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는 것 역시 어떤 목적의 실험 결과라는 음모설이 떠돌아도 이젠 놀라지 않는다.
그칠줄 모르는 인간들의 욕망은 지구를 사랑의 손길로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난폭하고 거친 방식으로 학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다 못한 지구의 반격이 시작된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황폐해진 아마존은 인간을 위해 더이상 빗물을 저장하지 않는다. 배기가스를 머금은 성층권은 희석시킬 의지를 상실했고 해변은 무자비한 인류를 위해 플라스틱 더미를 정화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쩜 폭염은 인간들의 욕망과 교만, 분노들의 응어리로 형성된 에너지의 집합체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마져 든다. 자제 할 줄 모르고 커져가는 인간의 욕망을 담은 폭염의 화염은 결국 인간이 이루어 논 욕망의 더미를 태워 버릴지도 모른다. 자비를 잃어버린 신들의 형벌이 아닌가 한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지구가 폭염으로 재난을 맞이하고 있다고 난리다.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태양아래 얼굴을 들고 나서지를 못하고 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비효과라는 말이 떠올랐다. 모임마다 쌓여 있던 플라스틱 컵과 빨대들, 설겆이를 피하기 위한 일회용 접시. 투고때마다 담겨지는 일회용 그릇들, 비닐봉지 등등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다. 분리수거 없이 마구 버리는 쓰레기의 주범이 바로 나인 것이다.
그뿐인가 공장마다 버려지는 폐수로 만들어진 소비재의 최종 소비자 또한 내가 아닌가. 아무 감각없이 즐기고 먹고 입고 했던 모든 것이 결국 뜨거운 폭염이 되어 내 앞에 버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책임을 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르릉 천둥소리가 들린다. 신들의 자비가 시작될 모양이다. 차고 넘친 인간의 광기어린 에너지는를 해소시키는 순환의 소나기가 내려질 시간이다. 그리고 지구는 치유의 사이클을 돌린다. 언제까지 자비어린 사이클이 계속될지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경고어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더이상 지구에게 무뢰해져서는 안된다. 오늘 아침, 기우제를 지내는 마음으로 텀블러를 두손 모아 꼭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