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 전 한국에서 인기를 끈 송강호, 이병헌 주연 ‘공동경비구역 JSA’이라는 영화가 있었다.이 영화가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어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판권을 사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국의 판문점과 휴전선 철책을 배경으로 한 내용을 미국 텍사스-멕시코 국경으로 옮겨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미국 텍사스-멕시코 국경이 한국 휴전선만큼 살벌할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현재 미국 텍사스-멕시코 국경은 정말로 휴전선 철책만큼이나 살벌해지고 있다. 최근 텍사스주는 이글 패스(Eagle Pass, Texas) 인근 리오그란데 강(Rio Grande River)에 1000피트(305미터)에 달하는 ‘수중 장벽’을 설치했다. 멕시코 피드라스 네그라스(Piedras Negras) 지역을 마주한 이 장벽에는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금속이 박혀 있어 스치기만 해도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로 인해 강을 건너는 밀입국자들이 심각하게 다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한 19세 임신부가 리오그란데강을 건너던 중 레이저 와이어에 몸이 걸려 있다가 겨우 발견됐다. 이 임신부는 결국 유산했다. 아이와 함께 밀입국을 시도하던 한 남성은 다리에 열상을 입었지만, 레이저 와이어에 몸이 낀 아이를 구하려다가 더 크게 다쳤다.
이는 밀입국자 문제에 강경 대응을 고수해온 그레그 애벗(Greg Abbott) 텍사스 주지사가 밀입국을 차단하겠다면서 세운 장치다. 애벗 주지사는 2021년부터 론스타 작전(Operation Lone Star)이라는 이름으로 밀입국자 단속을 벌여왔다.
이에 대해 마누엘 오티즈(Manuel Ortiz) 기자는 “애벗 주지사의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밀입국업자들(human traffickers) 뿐”이라고 비판한다. 밀입국 업자들은 1인당 500달러를 받고 밀입국을 주선해줬는데, 수중 장벽 설치 이후로 수수료가 1500달러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는 멕시코 정부기관이 밀입국을 방조하고 있으며, 오히려 밀입국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Southern Methodist University) 정치학과 칼 질슨 (Cal Jillson) 교수는 텍사스 국경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미국 역사에서 여러번 반복된 사건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일부 정치권은 언제나 비백인(non-white) 이민자들에게 적대적인 입장을 밝혀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은 1750년대 독일계 이민자를 비난했고, 1840-1850년대에는 아이리쉬계 이민자들이 푸대접을 받았다. 아시안 이민자들은 1880년부터 1950년까지 이민에 대해 여러가지 제약이 많았다. 그나마 19세기 말부터 “백인이면 이민와도 된다”(If you’re white, y’all come)는 분위기가 이민자들 사이에 조성됐다.
멕시코계 이민자들은 20세기초부터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오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일손이 부족했고, 멕시코계 이민자들이 일을 마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멕시코계 이민자들이 1950년부터 미국에 눌러앉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질슨 교수는 “미국인, 특히 백인들은 이민에 대해 어중간한 입장이며, 특히 비백인 이민자들에 대해서는 애매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민에 대한 공화당의 입장이 애매하다며, “한마디로 불법이민에 반대하지만, 합법이민에 대해서도 우려한다”는 식이라고 요약했다. 민주당 역시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민 문제가 불거지길 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공화당이 민주당에 “국경 경비에 소홀하다”고 비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인들 사이에도 남미계를 모두 밀입국자, 불법이민자로 싸잡아 비난하는 편견이 있음을 부인할수 없다. 그러나 일부 백인들에게 있어 한인 등 아시안 이민자들 역시 멕시코계와 똑같은 ‘비백인’에 불과하다. 설령 미국이 라틴계와 멕시코계 이민자들을 모두 몰아낸다 하더라도, 일부 백인들은 또다른 비백인 이민자들을 표적으로 삼을 것이다. 한인사회는 긴 안목으로 볼때 다른 이민자들과 연대해 친 이민정책을 응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