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停年)–. 정년은 샐러리맨에게 인생의 종착역임을 알리는 퇴장선고다. 발걸음마다 퇴락의 그림자를 동반하며 커다란 상실감에 밀어 넣는 불청객이다. 정년을 맞는 사람은 갑자기 높은 산등성이에서 밀려 떨어지는 것 같은 상실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어제까지 머리를 맞대고 일하던 동료 후배들이 까마득히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지만, 마음 한번 바꾸기가 어디 쉬운가. 퇴직한다는 것, 우리를 현재의 우리로 만들어주는 일을 포기한다는 것, 그것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고치에서 빠져나오듯 ‘나’로부터 해방되어지는 변화를 맞이했다. 그것은 새로운 전기였다. 우연히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이란 책을 접하게 된 것이다. 삶의 방향을 잃고 허우적거리던 나에게 이것은 죽비 같은 책이었다.
“참다운 삶을 바라는 사람은 주저 말고 나서라. 싫으면 그뿐이지만, 그럼 묘자리나 보러 다니든가.” 오든의 시로 시작하는 이 책은 서두부터 사뭇 도전적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일이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는가를 갈파하고 있다. 즉 내적 동기부여든 외적 동기부여든 삶의 목표를 가지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훨씬 유익하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진부한 자기 계발 지침서나 정신 건강 관련 책들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 출발한다. 현실을 덮고 있는 말들을 걷어내고, 현실 자체에 과학적이고 구체적으로 접근한다. 저자는 삶을 사랑하라는 감미로운 교시를 내리지 않는다.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공허한 구호를 되뇌지도 않는다. 그 대신,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몰입하라고 말한다. 아무리 하잘것없는 일이라도 그 일에 몰두할 수 있어야만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현실 어디에 눈을 주더라도 우리의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행위를 촉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대상이 널려있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넋두리는 용납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이 책은 삶의 목표를 잃고 허우적거리던 나에게 진한 감동과 도전으로 다가왔다. “흥미롭지 않은가. 그것은 내 만족의 원천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일을 이루어낸다는 의식이나 의욕이 없다면 인생은 무료하고 허망할 것 같다. 나는 그런 식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다. 가치있다고 느낄 만한 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허송세월하는 인생을 나는 죽기보다 싫어한다”는 반 우드워드의 말이 나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그것은 나에게 내일을 열어주는 새로운 희망이요 삶의 힌트이기도 했다. 이 책은 나에게 새로운 시작에 대한 자신감을 일깨워준 죽비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 책을 소재로 응모한 중앙일보의 독서감상문 공모에서 최우수상 수상자로 뽑힌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받은 감명이 너무 컸기에 내 혼과 정신을 담아 썼는데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에 꽂혔나 보다.
이 수상은 나에게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래, 아직 늦지 않았어. 밑바닥에서부터 새로 시작하는 거야!” 환갑을 넘은 내가 이민 간다고 했을 때 주위의 많은 분들이 만류했다. 나이 들어 왜 고생하러 가느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두려웠다. 이민은 일생일대의 중대한 선택이자 삶의 방향을 모조리 바꾸는 ‘인생혁명’이 아닌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떠남은 어느 면에서는 출발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새로움의 시작이다. 떠나는 순간 지금까지 익숙해져 왔던 모든 것들은 등 뒤에 있고, 앞에는 미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가 기왕의 삶의 세계보다 안락하고 평화로운 곳이란 보장은 없다. 아니, 어쩌면 지금보다 더한 고통과 험난한 세계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얼마를 더 살지는 모르지만, 남은 여생을 아무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을 죽이며 살 수는 없었다. 청소부라도 할 각오였다.
그로부터 2년 후 우리 부부는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때 나는 예순다섯이었다. 중간 기착지인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 1차 입국심사를 받았다. 9·11사태 때문인지 입국심사는 매우 엄격했다. 구두 밑창까지 검사를 받았다. 우리 부부는 다시 일반 승객과 분리되어 무거운 짐을 끌고 사무실로 가서 입국심사를 받았다. 심사관은 여권에 1년 짜리 임시 영주권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시카고에서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약 2시간 비행 끝에 워싱턴 DC의 덜레스 국제공항에 내렸다. 밖의 날씨는 음산하고 추웠다.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아내가 먼저 미국 양로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제는 내가 일자리를 찾아야 할 차례였다. 그런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매일 동네 도서관에 가서 한인 신문의 구인광고를 뒤져서 전화를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었다. 구인광고를 보고 어느 신문인쇄소에 전화를 걸었을 때 상대방은 대뜸 내 나이부터 물었다. 나이를 약간 줄여 60이라고 했더니 “우리는 50세도 뽑지 않아요.”하면서 전화를 탁 끊어버렸다. 눈물이 왈칵 솟았다. 나이 많은 게 이렇게 서러울 줄이야.
미국 도 착 약 4개월 이 지났을 무렵 워싱턴DC에서 직장을 구했다. 국무부 산하기관인 ‘미국의 소리(VOA )’였다. 과거의 경험을 살려 열심히 일했다. V0A에서 6년을 근무하고 다시 아내와 함께 중국에 가서 4년 동안 또 다른 일을 했다. 그리고 넓은 세상을 보았다. 인생 전반전보다 더 의미있고 보람있는 경험이었다. 미국 생활을 시작한지도 올해로 20년이 되었다. 저녁노을은 질 때가 더 아름답듯이 생의 황혼길을 황금길로 장식해야 할 텐데… 뒤를 돌아보니 꽤나 많은 길을 걸어왔다.
때마다 걷는 길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쉬운 길은 없었다. 앞으로 가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가지 않은 것 때문에 후회하는 일이 없기를 다짐해 본다. 고물과 골동품의 차이를 아는가. ‘나이 든다는 것은 고물이 되는 것이 아니고 골동품이 되는 것’이다. 고물은 버릴 때도 값을 치러야 하지만, 골동품은 세월이 갈수록 진가를 발휘한다는 기특한 관념으로 다시 일어선다.. 아름다운 골동품이 되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니 갑자기 엄숙해지면서 또 다른 힘이 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