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었다. 잡스는 1955년 생후 1주일 후 폴·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다. 잡스는 입양의 영향 때문인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를 자주 빼 먹는 괴짜이자 문제아였다.
학창시절 친구들 중에잡스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잡스의 성격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잡스는 담임선생님이 돈과 사탕으로 구슬러 겨우 학교생활을 하던 문제아였지만, 아마추어 전자공학 키트인 ‘히스키트’를 얻으면서 IT 기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
1972년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위치한 리드 대학교에 입학할 때에도 그의 괴짜생활은 계속된다. 잡스는 IT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 IT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이마저도 1학기 만에 포기하고 청강생 생활을 하는 그만의 독특한 생활을 한다. 잡스는 후일 비싼 학비를 내는 것이 부담스러워 학교를 그만뒀다.
청강생 시절 관심을 보인 분야도 독특하다. 잡스는 18개월 동안 학교에 머물면서 글자를 다루는 시각 디자인의 한 분야인 타이포그래피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 때 배운 타이포그래피는 후일 그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개발할 때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는 우리 시대 가장 논쟁적 리더 중의 한 사람이다. 동양적 리더십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타인에게 부드러운 외유내강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반면 잡스는 서양의 기준으로 보아도 타인에게 거칠고 엄격했다. 그는 그만큼 대중을 감동시킬 줄 알았다.
아이팟 비디오를 맥월드에서 시연회 할 때도 그는 청바지 차림의 수수한 모습으로 대중을 감동시켰다.‘참다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어쩌면 인생은 그런 여정을 수도승처럼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잡스는 그의 경험을 토대로 196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이런 명연설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전 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저희 세대의 필독서였죠.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시적 감성으로 생기가 넘치는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가위·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만든 책이었습니다. 구글이 등장하기 35년 전, 책으로 제작한 구글과 같은 것이었죠. 이상적으로 만들어진 책의 내용에는 깔끔한 도구와 훌륭한 개념으로 가득했습니다. 최종판이 나온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였을 무렵이죠. 최종판 뒤쪽 면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모험적인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할 수 있는 풍경이었습니다. 사진 아래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항상 갈망하라 우직하게 나아가라.’ 그것이 그들의 작별인사였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인상 깊은 책의 작별인사가 그에게 묘비명처럼 각인이 된 것 같다. 그는 스탠퍼드 대학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세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 그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가 성격이 고약한 최고경영자가 아니라 인생을 통달한 철학자로 느껴진다.
그는 대학 자퇴 후에 관심 없던 필수과목들을 그만두고 더 흥미 있어 보이는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다지 낭만적인 생활은 아니었다. 기숙사에서 머물 곳이 없어 친구 집 마루바닥에서 자기도 했고, 5센트짜리 콜라병을 모아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매주 일요일 밤이면 모처럼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을 걸어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정말 맛있었다고 회고한다.
“오로지 호기심과 직감을 믿고 저지른 일이 훗날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자퇴해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저는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 사이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활자 배치를 훌륭하게 만드는 요소에 대해 배웠습니다. 과학적으로 도저히 분석할 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 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이 중 어느 하나도 제 인생에 실질적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 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저에게 그것이 되살아났고,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서체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복제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실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많은 일 중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약을 들이키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환자에겐 필요한 법입니다. 때로는 인생에서 벽돌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일이 생기더라도 결코 신념을 잃지 마십시오. 나를 계속 움직이게 했던 힘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애정이었습니다. 일은 여러분 인생의 큰 부분을 채우게 될 것이고 ,여러분이 위대하다고 믿는 그 일을 하는 것만이 진정한 만족을 얻는 길입니다. 그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쉽게 안주하지 마십시오. 진심을 다해서 찾아내면 그때는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모든 위대한 관계가 그런 것처럼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속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십시오.”
그는 자신의 일을 철저하게 사랑한 사람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사랑한 것이다. 마치 일과 연애하듯 살다 갔으니 굵고 짧았지만 결코 후회가 없었으리라. 그는 죽기 전에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는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면서 병마와 싸웠다. “나는 암 진단을 받았다. 죽음은 어느 누구도 피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낡은 것을 없애고 새로운 길을 내어준다.” 죽음을 앞두고서도 그는 이렇게 초연했다.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정말로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도전한 삶이었기에 그의 메시지는 더 깊은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