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 (19)
‘무엇이든 나누어 가지라. 공정하게 행동하라. 남을 때리지 말라.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놓으라. 내 것이 아니면 가져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아프게 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라’ 이 지침들은 로버트 풀검 목사의 책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ten〉에 나온다.
이 책은 198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전 세계 31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대와 국적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사랑받는 진정한 베스트셀러이다. 삶이 복잡하고 어렵기만 할 때는 오랫동안 익혀 온 철학, 윤리, 법이 아니라 유치원에서 배운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실천하라는 가르침이 담겼다. 알지만 그대로 행동하며 사는 것이 참 어렵다고 느낀다.
그림책 〈Library Lion〉은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자의 이야기다. 도서카드와 책 냄새를 좋아하고 특히 이야기 시간을 좋아하는 사자는 도서관에 매일 오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아주 잘 지킨다.
커다란 발로 도서관을 조용조용 걸어 다니고, 절대 큰소리로 으르렁거리지 않으면서 도서관에 도움 될 일들도 한다. 백과사전에 묻은 먼지도 털어주고, 키 작은 아이들을 등에 태워 높은 칸에 있는 책을 뽑을 수 있도록 돕고, 이야기 시간에는 아이들의 푹신한 등받이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관장이 의자 위에 올라 책을 꺼내다 넘어져 다치게 되고, 사자는 이 사실을 알리려고 달려가서 으르렁거리며 큰소리를 내고 만다. 처음부터 사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서 맥비씨는 사자를 나무라고, 규칙을 어기면 도서관을 나가야한다 생각한 사자는 더 이상 도서관에 가지 않는다. 관장과 아이들 모두 사자를 그리워하고, 뒤늦게 사자가 규칙을 어긴 이유를 알게 된 맥비씨는 사자를 찾아 나선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도서관 유리문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자를 발견한 맥비씨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알면 기뻐할 일이 있어. 도서관에 새로운 규칙이 생겼단다. 으르렁거리면 안 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는 예외야. 그러니까 다른 친구를 도와야 할 경우 같은 것 말이지.” 이야기를 들은 사자는 기뻐하며 다시 도서관으로 간다.
작가 미셸 누드슨은 도서관 사서로 오랫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대한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녀의 도서관은 따사롭고 즐거운 곳이며 아이들의 상상력이 무럭무럭 자라는 곳이다. 이런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다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규칙이 필요하다. 도서관에 커다란 사자가 들어 왔지만, 사자보다 사자가 지켜야할 규칙이 더 중요하다는 관장에게서 규칙을 배운 사자에게 규칙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규칙을 지키지 못한 사자는 스스로 도서관을 나갈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법에는 원칙주의와 결과주의가 있다. 원칙주의에서 옳음이란 어떤 행위를 할 때 적절한 규칙을 지켜서 하는 것이다. 이와 다르게 결과주의란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은 그 행위의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결과주의의 대표적인 것이 최대다수의 최대 행복을 옳은 것으로 평가하는 공리주의이다.
국가라는 거대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했던 전체주의를 생각하면 공리주의의 문제점은 쉽게 드러난다. 또한 규칙을 중시하는 원칙주의는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다는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원칙대로 한 일은 실수나 사고가 적고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어서 문제 대책을 세울 수 있다.
규칙을 중시하는 도서관 관장과 사서, 그리고 어떤 결과에 상관없이 규칙을 어기면 당연히 도서관을 나가야한다고 생각하는 사자까지 모두 원칙주의를 따른다. 그러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규칙을 어긴 사자와 사자의 행동을 이해하면서 규칙을 바꾼다.
규칙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 바뀐 규칙을 올바로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힘없고 약한 사람에게만 원칙을 강요하고 힘센 사람에게는 융통성을 보이면서 사회를 위해 옳은 일을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기본적인 양심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사자처럼 조용히 도서관을 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