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난 필통을 무척 좋아했다. 필통을 여는 순간 느껴지는 연필들의 나무 냄새가 포근해서 였던 것 같다. 단정하게 깎여서 가지런히 누워있는 연필들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무 향을 가득 담은 예쁜 필통을 책가방에 넣고 사뿐한 걸음으로 사루비아의 빨간 골목길 따라 집으로 가는 길 옆 담장에는 행복이 주렁 주렁 매달려 있었다.
시간이 감에 따라 빨갛던 사루비아의 색은 희미해지고 포근했던 연필들의 나무향도 기억의 저편으로 멀어져 갔다. 자연스레 담을 거리의 형태도 바뀌어지고 내 관심도 필통이 아닌 가방으로 옮겨 갔다. 많기도 하고 때론 적기도 한 담을 거리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야 하는 가방은 너무도 다양했다. 각양각색의 형태와 색깔, 사이즈 등은 변화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과도 맞물려 가방들은 나의 최애 소장픔이 되었다. 또한 가방을 쇼핑하는 재미도 쏠쏠해서 한번 빠지면 몇시간이 훌쩍 지나버리 곤했다. 온라인 몰 뿐만 아니라 근처 쇼핑몰의 가방 매장은 수시로 들르는 나의 단골 장소가 되었다. 어찌나 참하고 예쁜 것들이 많은 지 하나 둘 사다 보니 어느 새 옷장 안에 가방들이 수두룩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가방들의 자리다툼이 벌어졌다. 가지런했던 선반의 가방들 위에 새로운 가방들이 덕지덕지 올라가 앉기 시작한 것이었다. 형체와 무관하게 덩어리져 있는 그것들은 이미 자기의 효용을 잃은 채 방치되고 있었고 순간 난 왠지 모를 수치심에 얼굴이 달아 올랐다. 그건 마치 잠옷 바람으로 들이닥친 손님을 마주해야 하는 것 같은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했다.
옛부터 우리는 보자기라는 것으로 각종 것들을 담아냈다. 얇은 천 한장으로 별별의 물건들을 담아 내는 지혜는 참으로 경탄 할 만하다. 둥근 옷소매 끝자락에 작게 접은 보자기 한장을 쓱 집어 넣고 다니다 필요 할 때면 소매춤에서 꺼내 간단히 담기만 하면 된다. 마치 강호의 고수가 악당들을 간단히 제압하고 유유히 바람 속으로 사라지듯이 단촐하게 보자기를 끼고 자유로이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담는 도구인 가방.
그것이 때로는 가벼움을, 때로는 버거움을 주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를 담고 싶다는 욕구는 뭔가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과 같은 것일 게다. 그 이면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잃어버린 것에 대한, 되돌아 갈 수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루비아 골목에서 느끼던 행복감과 포근함을 다시 느끼고 픈 아쉬움 때문일까, 쉽게 찾아지지 않는 나무 향을 맡고 싶은 그리움 때문일까… 내가 두리번 거리며 찾고 있었던 것은 아쉬움과 그리움을 채워 줄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스한 가죽 냄새의 가방을 만질 때나 얼기설기 짜여진 시원하고 가벼운 가방을 둘러맬 때 느끼던 감정의 소박함은 어느 한귀퉁이에선가 빨간 사루비아 골목길과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 인지 이핑계 저핑계로 들여온 가방들은 덩어리지고 뭉쳐진 내 욕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의 순수한 감정 속에 어느 샌가 욕심이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허전함을 채운다는 핑계로 교묘하게 도사리고 있던 탐욕의 모습이었다.
누구나 자신이 의식하든, 하지 않든 지난 날을 회상하고 그곳으로 데려다 주는 통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물려 받은 귀중품이 될 수도 있듯이 의미 있는 그 어떤 것도 지난 날의 자신을 만나 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이런 것들은 무채색의 일상에 고운 색을 입혀 삶을 풍성하게 해 주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준다. 하지만 자칫 길을 잃어 헤매고 다닐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탐욕이란 놈은 조그만 틈속에서도 자라나기 때문이다. 오늘은 핑계가 되어 버린 가방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는 틈새 청소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