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교육(敎育)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 말한다. 즉 한 나라의 교육은 국가의 백 년앞을 내다보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중국 제나라 재상 관중이 사용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관자’라는 책에서 ‘곡식을 심는 것은 일년지계요, 나무를 심는 것은 십년지계며, 사람을 심는 것은 종신지계다’라는 말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종신지계’에서 ‘종신’을 ‘백 년’으로 하여 ‘백년지대계’라고 한 것이다.
이 말을 들을 때면 일단 옳다고 수긍은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의 교육제도가 ‘백년지대계’인가에는 결코 아니란 생각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 수밖에 없다. 1945년 일제에서 벗어나 78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과연 우리의 교육제도가 국가의 미래 백 년 앞을 내다보고 확립된 것인가? 아니란 강한 부정적 대답밖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면 민 7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6년을 다니고 그 후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의 교육을 마치면 그다음엔 대학을 가게 된다. 대학입시제도가 수시로 바뀌어서 그에 따라 고등학교 교과과정도 바뀔 수밖에 없는 상태로 현재까지 지내왔다.
초등학교 교육은 중학교에 입학하기 위하여, 중학교는 고등학교에 합격하게 하려고, 또한 고등학교는 대학 입시에 합격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그런 형태였다. 따라서 이름있는 상급학교에 얼마나 많은 학생이 합격하느냐에 따라 학교의 서열이 결정되는 현상이 지속되었다. 즉 초등학교는 중학교 입학 준비를 위해서 존재하고, 중학교는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서 존재하며, 고등학교는 대학 입학을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이와 같은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70년대 중반경에 중고등학교 입학 시험을 없애버리고 추첨으로 학교를 배정받는 상급학교 입학 추첨제도가 민관식 문교부 장관 재임 시에 실행되었다. 학교 입학이 복불복에 의존하여 상급학교가 결정되었다. 즉 제비뽑기로 상급학교 입학이 결정되었다. 대학만 빼고.
여기서 또 새로운 문제랄까 부작용이랄까 어려움에 부딪히고 말았다. 운 좋게 우수한 학교라 정평이 나 있는 학교에 추첨이 되면 학부모나 학생이나 일단 마음을 놓지만 그렇지 않은 학교가 결정 되면 학부모나 학생이나 심적으로 불안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은 상급학교 진학 준비를 학교에만 의존하지 않고 과외 공부나 사설학원을 찾게 되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사설학원이 우후죽순처럼 번창하여 사설학원 밀집 지역이 생겨나고 학원 또한 성업의 현상이 빚어지게 되었다. 대학입시는 추첨제도가 아니니까. 대학 입시 재수생은 모두 학원가로 몰렸다.
여기서 공교육에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은 공교육 즉 학교 교육에만 의존하지 않고 사교육 내지는 학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매우 높이진 것이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학생은 미술, 성악이나 악기 등, 그리고 주요 과목 영어, 수학, 국어 등의 개인교습이나 학원을 찾아 하루가 모자라 밤 11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니 피곤한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 보니 학교에 오면 과외에서나 학원에서 이미 배운 것이니 잠이 올 수밖에…
지난달과 9월에 걸쳐 초등학교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가 연속적으로 발생하였다. 이런 현상이야말로 교육은 백 년 앞을 내다보고 계획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교육 현상인 것이다. 누군가가 한국 교육제도의 혁신을 단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교육 전문가가 진정 한국에 없단 말인가? 학자들과 일선 교사들이 지혜와 슬기를 모아 교육개혁이 이뤄 지기를 현 정권에 기대해 본다.
현재의 교육제도에서는 교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런 교육환경에서 은사(恩師)니, 스승이니 하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옛날엔,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단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 말은 골동품 중에도 썩어 문드러진 골동품이 되고 말았다.
더구나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란 말을 하면 듣는 이는 말한 자를 ‘상투에 갓을 쓴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임금과 스승과 아버지의 은혜는 같은 것이란 이 말이 그 의미를 되찾을 때가 있을지 없을지 현재로선 암흑뿐 바른 교육의 진로가 전혀 보이질 않아 참으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