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는 사우나를 하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순이가 사는 메이플릿지 공동체를 천천히 걸어서 돌아보던 중 사우나집은 흥미로운 곳 가운데 하나였다. 숲속에 아담한 호수가 있고 그 가장자리에 나무로 지어놓은 집이 바로 그곳이다. 사우나는 좋으나 준비물을 챙기는 것과 사우나 이후에 머리를 말리고 단장하는 과정이 번잡스럽지 않을까 싶어 순이의 물음에 대답하는데 뜸이 들었다.
새로운 일을 시도할 때 주저하는 나와는 달리 단호하고 적극적으로 보이는 순이의 기운은 이미 나를 이끌고 있었다. 그는 내가 입을만한 반바지를 내어주고 빠르게 수건을 챙겨 길을 잡았다. 숲길을 자박자박 걸어가 호수를 다시 만났다. 호수 한쪽에 아까는 보지 못했던 모래밭이 보였다. 한낮에는 어린아이들이 수영을 배우고 있었는데 모래밭까지 있어서 물놀이할 맛이 나겠구나 싶었다.
자그마한 사우나실에는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정말 오랜만에 맡아보는 사우나실의 냄새였다. 나무 향과 수증기가 섞인 건강한 냄새라고나 할까. 열기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계단식 자리의 맨 윗자리에 앉았다. 머리맡에 길게 연결된 줄을 당기면 달구어진 기계에 물이 쏟아져 뜨거운 수증기를 만든다. 줄을 몇 번 잡아당겨 온몸이 땀에 젖자 순이는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와우! 호수에 몸을 담가 땀을 씻어냈다. 냉온욕이 따로 없다. 마침 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한여름에 온몸으로 맛보는 달콤한 시원함이었다. 차분하게 내리는 빗소리뿐인 숲속 호수에 몸을 담그고 수다를 떨다니, 이런 경험은 살면서 쉽게 할 수 없을 듯하다. 이렇게 사우나실과 호수를 서너 번 오가며 열기와 냉기를 즐겼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질 손님의 피로를 풀어주려는 순이의 선택은 탁월했다.
메이플릿지에서 경험한 열기와 냉기의 반복은 사실 일상에도 이어진다. 비가 좀 많이 오면 내가 다니는 교회 건물 입구에 물이 흥건하게 고인다. 그 물웅덩이는 개구쟁이 아이들에게는 첨벙댈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지만 발을 적시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피해가야 하는 곳이다.
왜 물이 안 빠지나 알아봤더니 입구 옆에 심어놓은 나무가 오랜 시간 자라면서 뿌리가 올라와 물길을 막고 있었다. 그 매그놀리아 나무는 모두 네 그루로 키가 크고 잎이 많아 현관을 어둡게도 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난해에 그것들을 다 잘라내었고 그루터기만 남아 있다.
요즘 교회 주변을 단장하느라 백호(Backhoe) 같은 중장비가 교회 마당에 와 있다. 언젠가 그 기계를 운전하는 법을 살짝 배운 남편은 이 기회에 쓸모없는 그루터기를 제거하겠다고 나섰다.
그는 공적인 일에는 부지런히 열심을 내어 달려드는 편이다. 섬세함이 부족할 때도 있으나 마음을 다해 일을 이루어 간다. 워낙 덩치가 큰 기계를 건물 가까이에서 움직여야 하는 작업이라 마음이 쓰였지만, 남편에게는 내색하지 않았다.
반나절 동안 나무뿌리를 캐내고 저녁때 들어온 남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남편이 하는 일을 지켜보았던 아들 산이는 나에게 뭔가를 알려주었다. “아빠가 부쉈어! 나무뿌리로 팍 쳤어. 벽돌이 떨어졌어.” 이게 뭔 말인가 싶어 남편을 찾았다. 그는 산이의 고자질을 다 듣고 있었는지 나와 얼굴이 마주치자 설명을 덧붙였다. 굴착기로 나무뿌리를 캐내는데 끝도 없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뿌리를 어느 정도 정리한 다음, 백호 한쪽에 달린 버킷으로 파헤친 땅을 다지고 끌어당기다가 깊숙이 뻗은 뿌리에 걸려 현관 앞 회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을 쳤단다. 기둥을 감싸고 있는 벽돌이 일부 부서지고 말았다. 일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데 남편은 속상했나 보다. 내심 걱정스러웠다는 나의 지나가는 말에도 그의 마음이 풀어지기는커녕 더 차가워진 걸 보면 말이다.
남편이 작업한 곳에 물길을 내야 하는 일이 남았다. 누군가 수고하면 여러 사람이 산뜻하게 그 길을 지나다닐 수 있다.
타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열정을 쏟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 일이 해결되지 않는 차갑고 시린 시간을 경험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모든 일을 멈추고 잠잠이 물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 이 모든 시간이 쌓여 의미있는 삶이 되고 미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