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의 눈에 뿌연 막이 끼어 있었다. 시장통에서 봤을 어떤 생선의 눈알처럼 액체인지 찌꺼기 인지 모르는 것이 검은 눈동자를 덮고 있었는데 노인이 되면 그렇게 된다면서 백내장에 걸리신 거라 하셨다. 어릴 적 나의 눈에 비친 할머니는 누가 봐도 나이든 노인의 모습이셨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칠십 조금 넘은 나이로 노인이라 말하면 된통 역정을 내실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된다.
그 나이에 할머니는 백내장 수술을 받고 싶다고 자식들에게 말하였고 아들들인 외 삼촌들은 다 늙어 수술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 하며 괜히 무리한 수술은 오히려 몸을 축나게 한다면서 누구를 위한 이유인지 모를 말로 할머니의 마음을 서운하게 하였다. 하나 있는 딸인 우리 엄마는 내일 죽더라도 환하게 세상을 보고 싶어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아셨는지 그 당시 공 안과 라는 꽤나 유능한 의사에게 수술을 받게 하셨다.
무사히 수술을 끝내고 병실로 오신 할머니의 눈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덮개가 씌어져 있었고 나는 신기한듯 할머니 곁에 앉아 심봉사가 눈을 뜨게 되는 날 세상을 보게 될 놀라운 일을 상상하며 할머니와 꿈에 부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틀 후 할머니의 눈을 덮었던 덮개를 떼어냈을 때 세상이 너무 밝고 아름답다 하시며 환하게 웃으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었을 때나 하는 거라 생각했던 백내장 수술은 이제는 노인이라 말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아직은 청춘이라 말하는 50-60대 어른들이 쉽고 간단하게 노안 수술 겸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하여 받고 있는 안과 질환에 불과 한 것도 같다. 나이가 들어 노안이 와도 의료 기술이 좋아져 다시 밝은 시력을 되 찾을 수 있는 길이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하며 좋아하신다. 그렇게 눈의 노화를 잡아 두고 주름진 얼굴이 싫어 피부의 노화도 의술의 힘을 빌려 잡아 놓는다. 몸의 노화를 막기위해서 우리가 들이는 노력은 정말이지 그 옛날 나의 할머니가 보시면 기절초풍 할 정도로 놀랄 일이 될 것이다.
참 좋은 세상이라고 부러워 하실까? 노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단지 몸이 젊을 때 와는 다르게 여기저기 아프고 망가져 볼품없이 되 버리는 것일까? 그것이 싫어 보여지는 것을 고치고 보정해서 주름 없는 모습이 된다 해도 노인이 아닌 게 될 순 없는데 이 시대는 늙지 않는 노인이 많아지고 있는 것도 같다. 나 역시 노인이 되어가는 동안 이곳 저곳을 손대며 늙지 않은 노인이 되 보려 애쓰며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주름 잡힌 할머니의 얼굴이 그립고 눈이 밝지 않아 나에게 글을 읽어 보라던 할머니가 보고싶고 그렇게 나이 들어 가고 싶다.
어느때는 할머니가 아이 같아 보일때도 있었다. 심심찮게 할머니 에게 우스개 소리를 들려 드리면 아이처럼 큰소리로 웃으셨다. 웃는 얼굴에서 주름은 더 깊이 들어 났지만 그 모습이 그리운 건 자연스러운 표정이 따뜻하고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 나이 들어가며 변해가는 모습을 예쁘게 봐 주기로 약속했다.
하얘진 서로의 머리를 보게 될 것이고 주름진 얼굴을 마주할 것이며 곱고 희던 손은 세월을 거치며 살아낸 흔적을 보일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하다. 세상 살이에서 온 몸으로 배우고 익힌 삶의 지혜가 있어 자손들을 인내와 온유함으로 보듬어 줄 수 있으니 그 또한 노인이 되면서 얻게 되는 풍요로움이 아닐까 싶다. 몸이 약해지는 서글픔이 있겠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발전을 위해 애써야 하는 수고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 그 역시 감사할 일이 될 수 있다.
아이를 더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있으니 최고로 행복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노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마지막 선물이고 축복일수 있겠다 생각하고 그 시간을 지혜롭게 보낼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잘 다듬어 보리라 용기를 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