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학대 상처 딛고 원목의 길…환자 영혼 위로하고 싶어”
플로리다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며 임종을 앞둔 환자 수천 명의 이야기를 들어준 한인 목사 준 박(Joon Park, 41)의 사연이 CNN 방송에 보도됐다.
CNN은 “그는 환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들을 생각한다”며 박 목사가 그동안 병원에서 해온 일을 자세히 소개했다.
암에 걸리기 전 음악가가 되기를 꿈꾸며 길거리에서 지내던 한 청년은 임종 직전 박 목사에게 “꿈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다”며 생전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집에 대한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려줬다.
갓 태어난 세쌍둥이를 한꺼번에 잃은 엄마는 박 목사 앞에서 애끊는 비명을 내질렀다.
죽음 앞에서 겁에 질린 10대 소녀는 자신이 죽지 않게 기도해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다.
박 목사는 지난 8년간 플로리다주에 있는 1천40병상 규모의 탬파 종합병원에서 원목을 맡아 죽어가는 이들의 곁을 지켰다. 그는 자신이 만난 환자들의 삶에 깊이 빠져들면서 “마치 다른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고 지난날을 돌아봤다.
그가 병원에서 목사로 일하게 된 데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큰 영향을 줬다.
한인 이민자 2세인 그는 플로리다 라르고에서 자랐다. 어른의 권위를 중시하는 부모 밑에서 그는 어린 시절 언어적·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회고했다. 성인이 된 뒤에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애썼고, 영성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는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지쳐 있었고 우울했다”며 “어떤 것에 몰입하는 능력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상담 치료와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의 상처가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특히 자신이 어린 시절 갖고 싶었던 ‘롤모델’ 역할을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목사의 길을 택했고,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나처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자신이 삶에서 겪어온 일들을 통해 환자나 그 가족들과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됐다면서 “원목으로 일하면서 어떤 목적도 없이 오로지 완전한 연민과 이해로 상대를 보고, 듣고, 그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성직자(priest)와 치료사(therapist)의 중간 성격인 ‘치료 목사'(therapriest)라면서 종교적인 목적보다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환자가 원한다면 종교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정신 건강에서 슬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며 “우리는 신앙과 죽음 사이의 어떤 공간에 있고, 환자들이 대화를 원할 때 어떤 형태로든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병원에서의 경험을 인스타그램과 ‘엑스'(X, 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도 공유하며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최근에 그는 “매주 슬픔을 마주하는 사람이 전하는 몇 가지 알림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웃을 필요는 없습니다. 웃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라고 썼다.
그는 이 일을 좋아하지만, 삶 속에서 ‘죽음에 대한 불안’이 늘 따라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친구와 함께 앉아있을 때면 ‘내가 이 사람을 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그저 종이 등불에 불과하죠. 언제든 타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사람들과의 관계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병원의 말기환자 간병 책임자인 하워드 터치는 박 목사와 다른 원목들이 병원에서 환자와 가족들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목사는 죽어가는 환자들이 공통으로 얘기하는 주제는 ‘후회’라면서 대부분의 후회는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만 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그것이 늘 우리의 잘못은 아니고, 때때로 우리가 가진 자원이나 시스템, 주변 문화가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제 마침내 자유를 찾은 환자를 온전히 봐주고 들어주는 것이 내 희망”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