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기가 없어서 눈도 잘 못 마주치고, ‘길치’라서 지희가 일하는 다방을 찾아가지도 못한다. 그래도 장주원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다방 종업원인 지희를 보기 위해 단순 무식하게 그가 올 때까지 커피를 배달시키고, 잘 보이려고 서툴게나마 붕 뜬 머리도 신경 써 빗어넘긴다.
“무협지 좋아하시나봐요?”라는 지희의 심드렁한 질문에도 장주원은 눈을 반짝이며 답한다. “무협지 아닙니다. 멜로 소설이에요. 무협지는 결국 다 멜로예요. 좋은 사람이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끝나요.”
초능력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디즈니+ ‘무빙’은 극 중 인물 장주원이 좋아하는 무협지와 비슷하다.
초인적인 능력을 갖춘 주인공들의 화려한 액션이 펼쳐지지만 결국 본질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고 “좋은 사람이 이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며 끝나”는 결말도 정해져 있다.
전개와 결말이 뻔한데도 읽게 만드는 무협지의 매력은 익숙함에 있다. 적당히 평범한 주인공이 무림 고수로 거듭나 정의를 구현하는 이야기는 아는 맛이라서 더 무섭다.
세련된 맛이나 예측을 뛰어넘는 반전은 없지만, ‘무빙’은 마치 잘 쓰인 무협지를 읽어 내려가는 듯한 익숙한 재미를 파고들었다.
치킨집 사장, 버스 기사, 슈퍼 주인, 평범한 고등학생 등 평범해 보이는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모두 무협지 주인공처럼 정의롭고 선량하다.
조직원들과 300 대 1로 싸워 승리하는가 하면 홀로 북한에 잠입해 최고통치자에 총을 겨누는 등 능력도 출중하다. 비현실적일지언정 장르적 쾌감은 충실하게 전달해낸다.
사실 수백억원대 제작비가 투입된 ‘무빙’은 기대만큼 우려도 큰 작품이었다.
조인성·류승룡·한효주·차태현·류승범 등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데 대사가 있는 캐릭터만 120명에 달해 ‘사공 많은 배’가 될 것이란 평도 적지 않았다.
OTT 드라마가 6부작·10부작으로 만들어지는 추세를 거스르고 총 20부작을 고집했고, 초반 인물 서사를 쌓아 올리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다. 초반 7화를 등장인물들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는 바람에 공개된 직후에는 전개가 늘어진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초반부터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휘몰아치는 전개를 펼쳐낸 여느 작품들과 달리 ‘무빙’은 후반부로 갈수록 힘을 얻는다.
원작자이자 극본 집필을 맡은 강풀은 베테랑 이야기꾼답게 곳곳에 숨겨둔 복선을 회수해내고, 고유의 서사를 쌓아가던 캐릭터는 한데 모여 기대했던 앙상블을 만들어낸다.
‘무빙’은 시즌2를 암시하는 결말로 막을 내린다.
시간을 멈추는 능력을 갖춘 김영탁과 학생으로 신분을 위장한 신혜원(심달기)의 정체, 히어로로 활약하기 시작한 김봉석(이정하)과 국정원에 들어간 이강훈(김도훈)의 이야기 등이 짧게 비치며 다음 시즌을 기다리게 한다.
쿠키 영상 속에서는 다시 돌아온 의외의 인물도 앞으로의 전개에 대한 기대를 모은다. 연합뉴스
사진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