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동차 수리기사로 일했던 베아트리체 헤론(73)은 요즘 애리조나의 노숙자 쉼터에서 매트리스에 의지해 잠을 청한다.
지난해에는 노인시설에서 살았지만, 매달 받는 사회보장 급여(800달러) 중에서 600달러를 내는 게 버거워 거리로 나오게 됐다. 그는 워싱턴포스트(WP)에 “거리의 분뇨에서 나는 악취를 견디기 힘들다”고 한탄했다.
헤론처럼 최근 미국 각지에서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 59세~77세)가 노숙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면서 언론들의 조명이 이어지고 있다. WP에 따르면 의료시설에 보내지는 노숙자는 그나마 다행이고, 건강 악화로 거리에서 숨지는 일도 있었다.
고령 노숙자의 증가는 미국 전역에서 확인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데이드 카운티에선 55세 이상 노숙자 비율이 2018년 25.4%에서 지난해 31.4%로 올랐다.
같은 기간 워싱턴주 벨링햄의 60세 이상 노숙자 비율은 9.8%에서 14.5%로 뛰었다. 데니스 컬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WSJ에 “이 정도의 고령 노숙자 증가는 대공황 이후 처음”이라 말했다.
미국 인구의 약 22%인 베이비붐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풍요의 시대에 자라 소비문화를 주도했던 세대다. 이런 베이비붐 세대가 어쩌다 노숙자 신세가 된 것일까.
언론들은 그 이유로 ▶코로나19 당시 시행됐던 주거 지원정책 종료 ▶주거비 상승 ▶취약한 사회보장제도에 따른 연금 부족 등을 꼽았다.
팬데믹 기간엔 연방·지방 정부가 각종 지원금을 줬고, 세입자가 임대료를 못 내도 퇴거를 못 하게 막았다. 이제 이런 보호조치가 중단돼 경제적 취약 계층이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금 부족도 베이비붐 세대를 짓누르고 있다. 미국 퇴직자의 상당수는 연금 등 월수입이 1000~1100달러(약 146만원)지만, 방 한 칸짜리 임대료가 최소 1800달러다.
플로리다주 콜리어 카운티의 경우, 월평균 임대료는 2018년 1603달러에서 올해 2833달러로 치솟았다.
노후 준비를 제대로 못 한 것도 치명적이었다.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27%는 은퇴저축이 전혀 없다.
WSJ는 “베이비붐 세대 중 특히 60대는 2008년 금융위기 등 경제 침체기를 겪은 뒤 연금 지급이 중단된 직장에서 일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베이비부머들이 65세 이상이 되는 2030년 무렵 은퇴 물결이 이어지면서 미국의 연금 수령자는 2010년 5300만명에서 2031년 7700만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반면 연금 보험료 납입 근로자 수는 같은 기간 19% 증가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젊은 노동인구가 줄어드는 것도 악재다. 1984년 미국 노동인구의 60%는 40세 미만이었지만 이 비율은 45%로 내려앉았다.
연금 수령자 대비 근로자 비율은 현재 2.9명에서 2031년 2.4명이 될 전망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10년 내 모든 퇴직자의 연평균 연금이 6000달러 감소할 것”이란 경고음이 나온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의 증세 정책 등은 공화당의 반대로 표류하고 있다.
WSJ은 “고령 노숙자가 늘어나면 의료비 등 사회적 비용이 증가한다”면서 “미국 공공정책 전체의 위기에 따른 대가는 납세자가 치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서유진(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