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푸틴은 ‘현대판 차르(황제)’로 불린다. 심복의 반란으로 리더십에 손상을 입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위험한 독재자다. 푸틴은 집권 초기부터 ‘전성기 러시아’의 부활을 추구하며 ‘제국주의 시대’의 향수에 빠져있는 인물이다.
푸틴이 서방과 강경하게 대립하는 것이나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강행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푸틴이 그토록 동경하던 러시아 제국은 20세기 들어 허망하게 무너졌다.. 러시아 제국의 멸망을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 결정적인 두 사람이 바로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괴승 라스푸틴이다.
라스푸틴은 본디 시베리아의 농민 출신으로 말을 훔치다가 마을에서 쫓겨난 후 수도원을 전전하는 ‘돌중’이 되었다. 그는 1904년에 페테르부르크로 귀부인들 사이에서 많은 신도를 얻었고, 마침내 황후 알렉산드라까지도 사로잡았다.
니콜라이 2세와 황후 사이에는 뒤늦게 얻은 알렉세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황후는 알렉세이를 끔찍이도 아꼈다. 어머니쪽에서 독일 왕가의 피를 물려받은 황태자는 많은 유럽 왕실을 괴롭히던 혈우병에 걸려 있었다. 그런데 라스푸틴이 최면술을 걸어 알렉세이의 병을 ‘치유’했다. 라스푸틴은 황후에게 ‘살아있는 성자’가 되었다. 황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은 라스푸틴은 이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심약한 니콜라이 2세는 매사를 대가 센 아내의 뜻에 따랐고, 황후는 매사 라스푸틴에게 자문을 구했다. 라스푸틴은 황후와 황제에게 ‘우리의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라스푸틴은 궁정에서는 매우 정중하게 행동하고, 농민의 꾸밈없는 소박함을 보여주었으나, 밖에만 나오면 ‘개’였다. 그는 어리숙한 귀부인들에게 ‘육체의 속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설교하며 숱한 여성들을 농락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라스푸틴은 정치에는 깊이 관여하지 않았다. 전쟁이 터지고, 1915년 초가을 차르가 총사령관이 되어 전선으로 출전하면서 러시아는 이제 라스푸틴의 것이 됐다. 내무장관과 전쟁장관이 교분이 두터운 사람에게 돌아갔고, 며칠이 멀다하고 내각이 해산되고 개각이 이어졌다. 장관들의 목숨과 주요정책의 방향은 이제 라스푸틴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라스푸틴은 또한 꿈에 계시를 받았다며 황후를 통해 전선의 차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황후는 차르에게 매일같이 편지를 써서 ‘성자의 조언’을 전했다. “우리의 친구가 식량 공급은 걱정말랍니다. 다 잘될 거라는군요.” “우리의 친구가 너무 고집 세게 진격하지 말라고 합니다. 손해가 더 클 거래요.”수도의 거리에 황후와 라스푸틴의 관계를 조롱하는 벽보가 나붙고, 둘이 동침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마침내 대황후가 전장으로 달려가 차르에게 수도 귀환을 청했으나, 차르는 라스푸틴이 ‘신께서 보낸 성자’라면서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몇몇 황족들이 라스푸틴 암살 음모를 꾸몄다. 황족들은 자신의 부인들이 라스푸틴에게 빠져서 정신을 못차리고, 황제는 라스푸틴만 싸고돌며, 황후도 라스푸틴에게 빠져서 밤이면 몰래 라스푸틴의 침소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라스푸틴을 살해하기로 결의한 것이다. 그들은 라스푸틴을 초대하여 독약이 든 과자와 술을 먹였다. 그러나 그는 죽기는커녕 오히려 기타를 쳐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따라 ‘겁에 질린 암살자들’은 기타를 치고 ‘시체’는 흥겹게 마시며 노래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견디다 못한 암살자들은 총을 쏴서 라스푸틴을 죽인 후 네바 강의 얼음 아래 집어넣어 버렸다. 사흘 뒤 시체가 발견되었는데 당국은 ‘엄격한 검시’를 한 후 독살도 총살도 아닌 단순 익사로 발표했다. 어쨌든 이 전설적인 사나이는 죽기 전 황제에게 1년 안에 실현될 신비로운 예언적 편지를 남겼다.
“나는 내년 1월 1일이 오기 전까지 살기 어려울 것 같다. 만일 내가 내 형제와도 같은 러시아 국민들의 손에 죽게 된다면 러시아 황제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제국은 앞으로도 수백 년을 더 지속할 것이니까. 그러나 내가 만일 특권층, 귀족들의 손에 죽어 그들이 나의 피를 솟구치게 만든다면 그들의 손은 앞으로 25년간 피에 젖은 상태로 유지될 것이다. 러시아의 황제여, 만일 당신이 나 그레고리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를 듣게 된다면 당신은 다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의 일족 중 누구라도 내 죽음에 연루된다면 2년 안에 당신의 일족, 가족과 자식들까지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나는 죽을 것이며 더 이상 살아있는 자들과 함께하지 못할 것이다. 기도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굳게 가지고 당신의 가족을 생각하라.”
라스푸틴의 예언은 적중했다.. 니콜라이 2세는 라스푸틴이 암살된 지 두 달 남짓 후 제위에서 쫓겨났고, 그로부터 1년 남짓 후 온 가족과 함께 처참하게 살해되었다.
70여년 전 해방 직후 민중 사이에 유행한 민요가 있다.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 마라, 일본놈 일어나고 되놈(중국) 되(다시) 나온다.” 그 후 역사는 우리가 아는 대로다. ‘소련놈에 속지 마라’는 구절대로 소련은 북한의 남침을 뒤에서 후원했다. 전차와 중화기, 차관을 빙자한 전비를 제공하고 작전 계획까지 짜주었다.
중국은 6·25 발발 넉 달 만에 한반도에 ‘다시 나왔다’. 수십만 군대를 보내 코앞까지 온 통일을 막았다. 일본은 ‘일어났다’. 6·25 특수 덕에 호황을 누리며 경제 대국이 됐다. 무서울 만큼 딱딱 맞아 떨어졌다. 국제 정세를 꿰뚫어본 민중의 집단 지성에 감탄이 나온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이 70년 전 민요와 다르지 않다. 김정은과 푸틴 정상회담은 70년 전의 한 맺힌 민요를 떠올리게 한다. 둘의 밀착은 우리의 안보와도 직결된다. 우리가 이들의 ‘잘못된 만남’과 ‘위험한 거래’를 경계해야 할 이유다. 해방 이후 국제 환경은 격랑을 거듭했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 나라 간 관계에 선의란 없다는 사실이다. 존재하는 것은 자국 이기주의뿐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