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다림과 희망을 먹고 산다. 프랑스의 소설가 알렉산드르 뒤마는 “인간의 지혜는 단 두 단어 ‘기다림’과 ‘희망’으로 집약된다”고 했다.
‘기다림’ 하면 오랜 유배의 고통을 이겨낸 다산 정약용의 시가 떠오른다. 유배지에 머물면서 썼던 시인지라 그 고적함이 쓸쓸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가동귀(家僮歸)’란 시다. 가동은 집안일을 돌보는 하인이다. 그는 다산의 가족들이 보내는 편지를 간직한 채 천 리 길이 넘는 먼 길을 걸어왔다. 그를 통해 건네진 편지를 읽으며 다산은 가족들의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그러나 가동이 돌아가고 난 후 더 큰 적막감과 쓸쓸함이 몰려온다. “편지를 받으니 이야기 나눈 듯 하였는데 사람이 떠나고 나니 다시금 적막하다. 아무 일도 말도 없으니 하늘은 막막하고 길만은 변함없이 아득하겠구나. 새재의 길은 일천 구비요 탄금대 물길은 두 줄기라네.” 귀양살이 하고 있어 그 땅을 벗어날 수 없지만, 마음은 ‘가동’을 따라 집으로 가고 있다.
무심히 바라보니 금실 좋은 제비 한 쌍이 처마를 넘나들며 온종일 재재거린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니 그리움이 더 깊어간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남편을 생각하며 날마다 우는 아내며, 죄인의 아들인지라 앞길이 막막하기만 한 자식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염량세태(炎涼世態)다. 좋은 시절에는 뻔질나게 드나들던 이들도 형편이 어려워지자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야박한 세상에 눌려 행여 가족들의 마음에 그늘이라도 깊어지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는 스스로 자기 마음을 다독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염려한다고 하여 상황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 지금은 이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괴롬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히려 우리 내면을 허약하게 만든다. 괴로움은 회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뚫고 가야 하는 지도 모르겠다.
소망을 품은 기다림의 시간, 조용히 성경을 펴든다. 은거 기간 중에 성경 통독을 끝내는 것이 목표다. 생활 리듬을 지키며 건강을 챙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기다림’이란 고통을 수반하는 인내와는 다르게 설렘도 있고 즐거움도 있지만, 기다림은 언제나 어렵다. 기다리지 못하면 포기하고 실수하게 되며 또한 기다림이 없으면 아무 것도 오지 않는다.
비록 그리운 누군가를 만나지 못해도, 오래 꿈꾸던 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해도, 기다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기다리는 동안 불행에서 잠시 벗어나 기다림이란 좋은 배움으로 인해 불안하고 조급한 마음보다는 느긋한 여유를 가질 수 있으니. 기다림이 있어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찬 바람이 이상하게도 따뜻하구나.
빅터 프랭클 박사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프랭클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신경학자이며 심리학자이다. 그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은 우리에게 기다림의 희망을 선사한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프랭클 박사가 직접 경험한 것과 오직 공포와 두려움 뿐인 극한의 상황 속에서 용기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경험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수용소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며 미래가 없는 마지막 삶을 살았던 프랭클 박사. 살아남을 자신조차 없었던 프랭클 박사가 마지막 죽음의 문턱 앞에서 자신의 영혼과 1대 1로 조우하며 스스로를 구제할 수 있었던, 죽음마저 스스로 다스릴 수 있었던 솔직한 자기 고백의 이야기이다.
그는 삶의 작은 희망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삶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 맞닿아있었다. 그러나 극한 고통 속에서도 놓지 않은 단 한 가지 다짐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과 친구의 생명을 잃지 않겠다는 정신적인 과제였다. 고통 속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그 어떤 현재의 고통도 잊을 수 있었다.
수감자들은 특별하게 예술활동에 심취했다. 노래, 시 낭송, 촌극 등에 빠져들었는데, 그들이 예술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이유는 암울한 그들의 현실을 잊기 위한 좋은 방법이었다. 몇몇 수감자들은 극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을 딛고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은 사소한 유머였다.
프랭클 박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각난 삶에 한낱 실오라기처럼 남아있는 생의 의미와 책임을 견고한 직물로 짜 만드는 것 ’을 목적으로 한 심리치료요법인 로고테라피를 창시했다. 로고테라피의 기본 신조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다. 인간의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꿔 놓는다.
인간은 시련을 겪으면서 고통을 승리로 승화시키고, 스스로 시련을 견딜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낸다. 마음속의 두려움이 공포의 대상을 만들어낸다. 로고테라피에서 강조하는 것은 ‘과거의 집착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왜 살아야 하나 하는 인생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살아나갈 수가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살아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는 사람은 절대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수용소 네 곳을 전전하면서도 끝까지 삶의 품위를 잃지 않고 성자처럼 버텨나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살아온 산 증인이다. 92세의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영혼은 호수처럼 맑았다고 후학들은 전하고 있다.
그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비결은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에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아서 여기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내가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꿈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항상 ‘내가 어떻게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게 되었는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증언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한 번도 이곳에 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강연을 해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꿈속에서, 나는 여러분 앞에 서서 오늘 하는 바로 이 대화를 무수히 나누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