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의 일이다. 매주 만나는 글동무들의 모임에 까미노를 가려고 준비해둔 배낭을 가져가서 내용물과 전에 까미노를 마친 패스포트와 증서를 보여줬다. 3년 전에 한번 더 순례길을 걸으려던 각오가 코비드로 무산돼서 내 마음속에 끈적한 미련으로 남았다. 모두의 마음은 순례길을 걷고 싶지만 선뜻 나서질 못하는데 이변이 일어났다. 현대자동차 회사에 11년 이상 근무하는 은지씨가 강한 까미노 바람을 맞았다.
나를 통해서 제임스 성인의 초대장을 받은 은지씨는 용감하게 직장에 사표 내고 필요한 준비물을 하나씩 마련했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 가족들을 본 후에 홀가분하게 스페인으로 갔다. 그녀가 스페인의 레온에서 순례길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보냈다. 낯익은 레온의 성당과 정경을 보니 내 가슴이 뛰었다. 나는 매일 그녀가 지나갈 지역을 상상하며 그녀의 순례길이 축복의 길이기를 기도했다. 2주 후, 발목이 퉁퉁 부었고 종아리가 아파 걷는 것이 고통이지만 그녀는 드디어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했다.
“9/23 토요일 산티아고. 이렇게 고되고 힘든 여정의 까미노를 마쳤으니 앞으로의 새로운 인생에 힘과 용기를 주시면서 어떤 상황이 닥쳐도 꿋꿋하게 잘 살아갈 거라고 하신다. 모든 건 내 마음 먹은 데에 달려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내 인생을 사는데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까미노 여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적으로 많은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이처럼 앞으로도 내 인생에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지만 내 옆에 항상 길동무가 나를 응원해줄 것이라고 하신다” 내 기도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녀의 소식을 받았다.
“9/24 일요일 산티아고-묵시아. 오늘은 묵시아로 간다. 9시15분 출발 버스를 타려고 7시쯤 호텔을 나서서 한 친절한 남자의 소개로 택시정거장을 찾아가서 택시를 탔다. 현대 NX4투싼 회색 차였다. 반가워서 아저씨에게 이 차 좋으냐고 물으니 아직까지는 문제없다며 7개월만에 7만 킬로 달렸다 해서 놀라웠다. 터미널 가까이서 바로 버스 타느냐 아니면 카페에 갈거냐 묻길래 카페에 간다고 하니 미터기는 끄고 나의 몇 발자국을 아끼게 카페에 내려 주셨다. 생각보다 아주 큰 버스 터미널의 카페에서 오렌지쥬스와 계란후라이 바케트를 주문했다. 진통제를 먹어야 해서 그 큰 샌드위치를 다 먹고 묵시아행 버스를 탔다.
버스에서 살세다 알베르게에서 같이 묵었던 대만소녀 앰버를 만나 반가워서 포옹을 했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호텔에 도착해서 배낭을 맡기고 호텔 아저씨가 알려준 12시 미사를 보러 나섰다. 언덕길을 열심히 걸어가니 아주 아름다운 성당이 큰 파도가 치는 웅장한 바위 옆에 있었다. 그곳에서 어제 산티아고 대성당에서와 같은 의미 깊은 미사를 봤다. 성체를 모시고 진심으로 기도 드렸다.
미사 후 바위틈새로 물이 고인곳에 발을 담그고 내 아픈 발목을 위해 이런 선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발목까지 차인 물에 첨벙첨벙 놀며 아름다운 자연이 준 휴식을 맘껏 즐기다가 호텔에 돌아왔다. 12시 미사를 봤다고 하니 호텔아저씨가 잘했다며 내 배낭을 대신 매고 3층의 방으로 인도해 주셨다. 내가 웃으면서 “당신도 순례자?” 하니 “Everything OK” 그의 말에 내 가슴이 뭉클했다. 그의 따스한 눈빛과 친절한 말에 내 힘들었던 끼미노 여정이 녹아 있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리고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갔다. 바닷가 식당의 야외테이블에 앉아 화이트와인과 가리비를 시켰다. 양이 너무 작아서 새우구이를 시키고 다시 탄수화물이 댕겨서 감자튀김을 더 시켰다. 와인을 마시고 스파클링 와인을 한잔 더 마셨다. 그리곤 잠시 바닷가를 산책했다. 바다물이 있는 계단에 앉아서 또 발을 담궜다. 손수건을 가져오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내 발목에 엄청 행복한 냉수 찜질을 했다. 벤치에 앉아서 발을 말린 후 작은 구멍가게에서 필요한 몇 가지 간식을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숙소에서 노을을 보고 편안한 잠을 자야겠다.”
땅끝이라 알려진 대서양 바닷가 묵시아에서 편안한 잠을 자는 은지씨를 생각하니 안도와 기쁨, 그리고 감사했다. 은지씨의 강인한 의지와 자유로운 영혼에 축배를 들며 이제 은지씨가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까미노 시스터들인 마가렛과 나, 그리고 은지씨의 만남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