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으로 인생배우기(20)
어릴 때, 뻥튀기 과자를 녹여 먹으며 달 만들기 놀이를 하곤 했다. 하현달이 반달이 되었다가 그믐달이 되어 입 속으로 사라지면 ‘꿀꺽’ 소리를 내며 달을 삼키는 상상을 했다. 달은 인류에게 수많은 예술작품의 영감이며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이다.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는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말처럼 인류는 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고 달에다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여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면서 달과 더불어 생로병사를 나누어 왔다.
작가 필립C. 스테드의 글에 그의 부인 에린이 그림을 그린 그림책, 〈Music for Mister Moon〉에는 달님과 친구가 되어 달님을 도와주는 헤리엇이 나온다. 헤리엇이 상상하는 달님은 어떤 달님일까?
헤리엇 부모님은 헤리엇이 큰 오케스트라에서 첼로 연주하는 것을 꿈꾼다. 하지만 헤리엇은 사람들 앞에서 첼로 연주하는 자신을 상상만 해도 마음이 답답해지고 겁이 난다. 헤리엇은 벽난로와 탁자가 있는 자신의 방에 혼자 있을 때만 첼로를 연주하고 싶다. 사방이 조용해진 밤에 첼로를 켜려고 활을 들은 헤리엇은 창밖에서 시끄럽게 우는 올빼미를 쫓으려고 찻잔을 집어던진다. 그러자 갑자기 집이 연기로 가득차고 물동이로 벽난로 불을 끈 헤리엇이 집밖으로 달려 나갔을 때, 굴뚝에 몸이 낀 달님을 만나게 된다.
헤리엇이 던진 찻잔에 맞아 하늘에서 떨어진 달님을 굴뚝에서 빼낸 헤리엇은 추운 달님을 위해 달님을 수레에 싣고 모자장수를 찾아 간다. 달님이 쓸 모자를 사고 싶다며 1달러를 내미는 헤리엇에게 모자장수는 “젊었을 때 달빛아래에서 사랑이 이루어졌단다.”며 모자를 그냥 준다.
진짜로 호수 위를 떠다니고 싶다는 달님의 소원을 듣고 헤리엇은 수레를 끌고 어부의 집을 찾아 간다. 달님이 배를 타고 노를 저을 수 있게 배를 빌러달라며 1달러를 내민다. “예전에 달님이 폭풍우를 몰아내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비추어 주었단다.”라며 어부는 돈을 돌려준다.
헤리엇과 달님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호수 한가운데로 가서 물소리와 부표 종소리를 감상한다. 하늘은 너무 조용하다며 헤리엇에게 하늘로 올라가 첼로를 연주해 달라는 달님의 부탁에 갑자기 손에 땀이 나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헤리엇. 하지만 용기를 내서 “눈감고 조용히 듣기만 하겠다고 약속하면 연주해 볼게요.”라고 대답한다.
헤리엇은 다시 어부를 찾아가 그물을 빌리고, 올빼미를 찾아가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달님이 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올빼미는 모든 친구들을 불러와서 달님이 탄 그물을 끌어 하늘에 올려준다. 올빼미들이 돌아가고 조용해진 밤하늘에서 헤리엇은 첼로를 연주한다. 오직 달님을 위한 음악을 연주한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38만4400킬로미터이며 지구 지름의 60배 거리란다. 이런 수학적 거리와 상관없이 달과 사람의 마음거리는 이웃사람처럼 가깝다. 우리가 바라볼 때마다 늘 그 자리에 떠 있는 달이기에, 달도 우리를 늘 바라보고 있다는 상상이 거리를 좁혀주는 것 같다. 수많은 우리와 다르게 달은 늘 혼자 있으니 외로워 보이고, 우리가 놀러와 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인지 모르지만, 인류는 언젠가 달나라를 건설하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교통을 열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림책을 읽으면서 올빼미를 쫓기 위해 헤리엇이 창밖으로 던진 찻잔의 의미를 오래 생각했다. 나만의 공간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하늘에서 달님을 떨어뜨리고 미안함으로 달님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 마치 인간과 지구의 관계 같았다. 언젠가 인류는 달에서 재배한 재료로 요리를 하고 달에서 캐낸 자원으로 생산한 제품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진짜 온다면 지구의 환경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황폐화된 결과일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 전에 지구환경을 위해 더 애써야 한다는 것은 아닐지.
가만히 있는 달님 같지만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목숨을 구하도록 돕기도 하는 달님처럼 자신만의 공간에서 나와 달님을 위해 노력한 엘리엇은 다른 사람과 나누는 기쁨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달님을 위하여 연주하던 음악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연주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