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8월 15일은 둥그런 보름달이 뜨는 한가위이다. 어린 시절 엄마는 밤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달님을 가리키며 달님안엔 옥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를 찧고 있대 하시며 은근히 웃으셨다. 그 소리에 옥토끼가 어디쯤에 있나 눈을 크게 뜨고 한없이 달님을 바라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른이 되고는 토끼라니 말도 안돼 하면서도 그 시절 부드러운 달빛아래 보물찾기 하듯 토끼를 찾고 소원을 빌었던 아련한 그리움이 좋아서 보름달이 뜨는 둥근 밤이면 절로 미소가 나곤 했었다. 자연스레 나 역시 아이들에게 옥토끼 이야기를 해주고 토끼찾기에 여념이 없던 아이들 모습에 흐뭇했었다. 달님한테 이야기 해보렴 하며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모아주었던 그 밤의 달님은 친근한 노오란 달무리를 만들며 둥글둥글 웃어주고 있었다.
미국으로 건너와서 우리 가족은 첫번째 한가위를 맞았다. 나들이하듯 달구경가자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너른 공원으로 나가자 순간 커다란 보름달이 눈앞에 가득 찼다.
평소보다 몇배나 더 커 보이는 그 달은 유난히 하얗게 두드러져 밤하늘에 선명한 경계를 만들고 교교하게 흐르는 달빛은 주변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그 달님 어디에서도 옥토끼가 살 것같지 않아 우리는 당황하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양에선 보름 달이 뜨는 밤이면 인간이 늑대로 변하고 드라큘라가 살아난다고 하던데 그 말이 정말인가봐 하며 나는 당혹감을 무마시켰다. 우리는 한바탕 웃음으로 차가운 보름달의 한가위를 넘겨 버렸다.
미국 보름달의 색다름도 시간이 감에 따라 익숙해지고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송편 대신 터키를 굽는 것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터키를 주문하고 덜 단 파이를 고르는 것 역시 떡국 국물용 양지를 고르고 어떤 송편 속이 맛있을까 생각하는 것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이다.
이제 한국의 한가위는 미국의 땡스기빙이 되어 버렸다. 어느 날 마켓에 송편이 보이고 각색의 전들이 진열대를 채우면 어머나 벌써 추석이네 한다. 식구들이 정겹게 둘러 앉아 달콤 짭짤한 깨 한소쿰, 곱디 고운 흰 팥앙금 한 움큼 넣어 반달 같은 송편을 만들던 기억도 옥토끼와 함께 가슴 한켠 어디엔가 숨어들고 어느 새 추운 11월 땡스기빙 음식을 준비하는 나를 보곤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제각각 떠난 후에는 함께 모일 수 있는 미국 명절이 더 큰 의미를 차지하게 되었고 땡스기빙은 일년에 몇 안되는 온 가족이 모이는 미국 명절이자 우리 가족의 명절이 되었다.
어느새 추석 한가위가 돌아왔다. 명절이라 더욱 생각나는 가족들 때문인지 잠이 일찍 깼다. 동이 트기 직전의 푸른 어둠이 창가에 걸려 있었다. 여름이 지나간 자리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잠든 거리를 깨우며 나를 반겼다.
천천히 걸음을 호숫가로 옮기자 뜻하지 않았던 달님이 호수에 금빛을 내리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한가위 보름달이었다. 위협적이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옥토끼가 마음껏 뛰어 놀고 늑대인간의 하울링에도 넉넉함으로 감싸 안을 것 같은 따스한 달빛으로 나를 마주보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달님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주세요 하고 말을 건냈다. 달님은 화답하듯 가장자리에 노란 빛을 밝히면서 아침 동녘에 서서히 스미어 들었다.
명절이 좋은 것은 평소엔 하기 힘든 것들을 공공연히 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한다.
그리운 가족을 만나고 뜸했던 지인의 소식을 들을 수도 있는 시공간의 널널함이 허락되는 힐링의 기간이기 때문이다. 추석이냐 땡스기빙이냐를 구분하기 보다 옥토끼와 계수나무, 늑대 인간과 드라큘라 같은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그때여야만 제맛이 나는 그런 소중한 순간을 음미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남들보다 두배나 더 많은 명절의 혜택을 가진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땡스기빙에는 터키대신 살찐 닭을 굽고 파이대신 빈대떡을 차려내야 겠다. 우리 손주들은 옥토끼와 늑대 인간과 드라큘라가 같이 어우러지는 이야기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겠지 하는 생각에 보름달을 안은 듯 가슴이 가득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