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미국인 탈세 막으려고
4배 이상 올린 비용 원위치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던 전 미국인들이 연방 정부를 상대로 수수료 환불 소송을 제기했다.
표면적으로는 국무부가 국적 포기 수수료를 낮춘 것을 문제로 지적했지만, 이면에는 해외 거주 미국 시민권자에 대한 정부의 과세 제도가 원인으로 작용했다.
ABC뉴스 등은 5일 레이첼 헬러 등 전 미국 시민 4명이 국무부 등을 상대로 연방 정부가 과도한 국적 포기 수수료를 부과해 부당 이득을 챙겨왔다며 연방법원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일 국무부가 시민권을 포기하는 데 필요한 절차인 미국 국적 상실 증명서(CLN) 신청과 관련해 기존 수수료(2350달러)를 2014년 이전 기준인 450달러로 인하하면서 비롯됐다.
소송을 제기한 헬러는 인터뷰에서 “그동안 시민권을 포기하는 데 있어 비싼 수수료 등 그 절차가 너무 가혹했기 때문에 이제는 차액을 환불받길 원한다”고 말했다.
전 시민권자들의 이러한 분개는 단순히 수수료 환불을 넘어 미국 정부의 과세 제도인 ‘FATCA(해외금융계좌납세준수법)’를 향하고 있다.
이번 소송은 ‘우연한 미국인 협회(Accidental American Association)’에 소속된 회원들이 제기했다. ‘우연한 미국인’이란 우연히 미국에서 태어나 시민권을 갖게 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외에 거주하면서 자신이 미국 정부에 세금을 내야 하는 사실을 모르는 미국인을 의미한다.
ABC뉴스는 “FATCA는 오바마 정부가 역외탈세 방지를 위해 지난 2010년에 도입한 과세 제도”라며 “그때부터 해외에 사는 미국인들은 납세 대상에 오르게 됐고 이 때문에 시민권 포기가 이어지자 국무부는 2014년부터 수수료를 2350달러로 올린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국세청(IRS)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소득세, 재산세, 증여세 신고 및 예납 세액 납부에 적용되는 납세 규정은 해외에 체류하는 미국 시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해외 거주 시 모든 출처에서 얻는 소득은 전부 과세 대상이며, 소득세법에 따라 모든 소득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현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사는 헬러는 “세금 보고 시 행여 실수라도 했을 때 미국 정부가 부과하는 수수료가 너무 높다 보니 소득 신고 과정 자체가 공포였다”며 “1997년에 미국을 떠났는데 그 나라에 내 소득을 보고하기 위해 매년 1000달러 이상씩 회계사에게 쓰는 게 아까웠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2015년에 국적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무부는 이번 소송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우연한 미국인 협회의 파비앙 레하그 대표는 “국무부는 국적을 포기하게 만드는 원인인 ‘FATCA’를 개선하기보다 이 때문에 급증하는 국적 포기를 막으려고 수수료를 올렸다”며 “게다가 FATCA 때문에 해외에서의 계좌 개설, 주택담보 대출이 까다로워졌고 미국인 디아스포라들의 번거로움, 불편함이 커지게 되면서 국적 포기 사례가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세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만 1300명 이상이 미국 국적을 포기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