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살아 계세요?” 나의 질문에 40대 후반의 은행 지점장은 “네” 했다. 그리고 “당신 아버지가 80대쯤 되세요?” 라는 나의 다음 질문에 그는 다시 “네”로 대답했다. “그러면 제 남편이 한 실수가 노인들이 쉽게 일으킬 수 있는 일임을 이해 하시죠?” 그가 웃으며 이해한다고 했다. 나는 좋은 결과를 부탁하고 남편의 팔을 잡고 은행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은 계속 불평했다. 자기가 은행 서류의 아주 작은 글자를 읽지 않아서 한 실수였는데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계좌를 동결 받고 사기꾼 취급을 받느냐며 화를 풀지 못했다. 늙는 것도 서러운데 세상 돌아가는 체제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억울해 했다. 은행법과 규정은 변하는 상황에 따라 함께 바뀌어서 예전 제도에 익숙한 남편을 당황 시켰다. 더구나 사기가 만연한 요즘 어느 은행이나 그들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에 민감한 시절이다.
잔뜩 화난 남편에게 은행의 자체조사가 끝나고 그의 신용이 복구되면 무조건 돈을 다 꺼내고 계좌를 닫으라고 말하던 나도 씁쓸했다. 신체만 아니라 정신도 간혹 휘청거리는 남편이 자주 사고를 일으키니 혼란스럽고 화가 났다. “제발 단순하게 삽시다” 내가 목소리를 높이니 옆에 앉았던 남편이 불평을 멈추고 히죽 웃었다. 그리고 “당신 삶이 심심하지 말라고 즐겨주는 나에게 감사해.” 우리 부부의 코미디다.
나이 70이 지나면 돈 벌려는 것보다 지혜롭게 돈 쓰는 것에 치중해야 한다는 상식이 결핍된 남편은 여전히 젊은 시절에 하던 버릇대로 증권시장의 추세를 따르면서 투자 전문가들의 강의를 구독하고 매일 몇 시간씩 이런저런 주식을 탐색한다. 사회가 어수선하니 증권시장도 덩달아 기우뚱거리고 세상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사태나 대기업들의 근황에 따라 들쑥날쑥하는 주식의 가치를 저울질한다. 그런 남편을 멈추게 하려다 지쳤지만 그것도 그의 취미라 여기고 내 마음을 편히 가졌다.
그런데 작년 2월에 사기꾼에 속아서 거금을 잃고 난 후에 남편이 자신의 취미 생활을 재정비 하는 듯해서 안심했는데 그것은 아주 잠시였다. 나이 들면 어떤 버릇이든 쉽게 고쳐지거나 변하지 않는다. 남편은 손가락 숫자와 같은 수의 많은 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으니 늘 바쁘고 늘 복잡하다. 그러다 보니 혼돈해서 실수하는 일들이 자주 생긴다. 그때마다 그의 은행방문은 잦고 또한 전화통화도 많다. 그래도 좋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 아니고 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 맘대로 자유롭게 활동하니 얼마나 좋은가. 오히려 감사하다.
6년 전 주정부 보건성에서 퇴직한 남편은 근무할 적보다 더 바쁘다. 성당 Knights of Columbus 형제회에 봉사한 지도 20년이 훨씬 지났다. 120여명 되는 회원들 관리하고 골치 아픈 재정 담당을 아무도 물려받으려 하지 않아서 계속한다지만 솔직히 남편이 넘겨줄 마음이 없는 눈치다. 그리고 로타리 클럽 일도 앨라배마 남부의 한 분야 책임자로 잘 봉사한다. 뭐든 서류를 만지고 일 처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래도 계속한다. 손주들에게 수퍼 할아버지로 머물려고 운동 다니고 뜰일이나 잔디 깎는 것도 아직 직접하니 그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시간의 순리가 있다. 라이프사이클에 따라서 시작할 때와 멈출 때가 있다. 앉을 때가 있고 설 때가 있듯이 세월의 흐름에 동행하며 욕심과 책임을 내려 놓을 때도 있다.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비켜주지 않으면 후세에, 더욱 사회에 민폐를 끼친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분명 느낌이 있었다. 공군에서 퇴직할 적, 그리고 지역상공회에서 물러날 적이나 비영리단체에서 손을 뗄 적에 떠날 때가 되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적절한 때를 피하고 외면한다는 나의 잔소리를 묵살했다. 그렇게 피터팬으로 머물고 싶은 남편을 나는 은근히 좋아했다.
더불어 남편은 가끔 나를 놀라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해바라기 꽃다발을 안겨주고 달콤한 초콜릿이나 떡을 사오고 맛있는 밥도 많이 사준다. 일반상식이 부족한 남편에게 나는 도움을 주고 내 노트북이나 아이패드 등이 말썽부리면 남편이 고쳐준다. 그러니 혼란한 미로를 만들어도 아직 내 옆에 있는 남편이 고맙고 그가 은행에서 쫓겨나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