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이퀄라이저 3(The Equalizer 3)’가 최근에 개봉되었다. 그 이전 시리즈에서 보았던 주인공 로버트 맥콜 역을 맡은 덴젤 워싱턴의 차가운 듯 따듯한 연기와 액션 영화라는 장르는 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이탈리아 시골 농장의 평화로움과 거기서 습격당한 부하들이 죽어 널브러진 사이를 걸어가는 보스의 긴장감이 묘한 대조를 이루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짧은 대화가 있다. 영화 초반에 총상 입은 맥콜을 낯선 의사가 정성껏 수술해준다. 수술을 마친 의사는 맥콜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 아니면 나쁜 사람인가?” 질문한다. 맥콜은 “모르겠다” 고 대답한다.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 이번엔 맥콜이 의사에게 “나 어떤 사람 같아요?” 묻는다.
총에 맞은 사람을 보고 구급차도, 경찰도 안 부르고 상처에서 회복하도록 긴 시간을 들여 돌봐준 이유를 의사에게서 듣고 싶었나 보다. 더군다나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맥콜 자신도 모르겠다는 의아한 대답을 받고서도 말이다.
의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대답은 좋은 사람만 할 수 있어요.” 선과 악, 예와 아니오를 명확하게 나누어 선을 그어야 할 것 같은 지점에서 이 영화는 나에게도 어떻게 대답할지 묻는다.
맥콜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당하는 불의한 일에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맥콜에게는 모든 이웃을 도울만한 능력도 없다. 생선가게 아저씨가 마피아에게 두들겨 맞고 아저씨네 집에 누군가 불을 질러도 맥콜은 지켜볼 뿐이다. 맥콜은 자신의 체력을 키우면서 미국 정보기관에 마피아에 대한 정보를 흘려 도움을 받는 정도다.
맥콜이 머무는 동네는 이탈리아 작은 어촌이고 마을 사람들은 신앙심이 깊고, 소박하고, 우애가 깊다. 그들은 미국인 맥콜을 기꺼이 동네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맥콜은 마피아가 사람들 앞에서 보란 듯이 아무렇지 않게 악을 행하자 그제야 이퀄라이저로서 악당들을 척결하기 시작한다.
자연 속에 음과 양은 언제나 존재한다. 음양은 한쪽으로 기울기도 하고 점점 극단으로 치닫기도 하다가 어느 지점에 이르면 다시 균형을 잡아간다. 맥콜은 물론이고 영화 속 다른 인물들의 삶에서도 이런 균형을 찾아볼 수 있다. 계절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무더운 여름이 길게 느껴지는 몽고메리 날씨지만 한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서늘한 기온은 여름에 흘린 땀을 씻어주고 성실한 수고의 결실을 가져온다.
아침이면 비슷한 시간에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동쪽을 향하여 도로를 달린다. 가을이 오면 그 시간대에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장관을 자주 목격한다. 오염이 적은 하늘이라 그런지 이곳이 정말 태양하고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태양이 어마어마하게 크게 보인다. 몽실몽실한 구름이 낀 날에 맞이하는 일출도 얼마나 당찬지 모른다. 태양은 구름 테두리를 맑게 빛나는 금빛으로 장식한 구름옷으로 차려입고 위엄 있게 등장한다. 또 온 세상을 붉은빛으로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은 언제 봐도 벅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것은 변화와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다만 올가을에는 일상에 큰 변화가 있고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잘 몰라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기대와 두려움으로 두 눈을 꼬옥 감는다.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평화로운 바람이 흘러나온다. 그 신선한 바람은 나를 감싸 안고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도록 밀어준다.
영화 속 맥콜처럼 나 역시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님의 큰 계획 가운데 내 삶이 들어 있다는 것만은 안다. 불현듯 가수 조용필이 부른 ‘바람의 노래’가 입속에서 맴돈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 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