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이 불타고 있다. 중동 분쟁의 상징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영토분쟁이지만, 이면에는 종교 역사 민족 및 힘의 국제정치가 얽힌 고질적 사회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기원전 70년 로마의 예루살렘 파괴 이후 2천년 가까운 이산(디아스포라)을 겪었던 유대인들에게 이 땅은 양보할 수 없는 약속의 땅이다. ‘에레츠 이스라엘 즉 신이 허락한 이스라엘의 땅이라는 개념은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이기도 하다. 반면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유대인들은 침략자다.
분쟁의 중심에 예루살렘이 있다. 예루살렘은 유대교도, 그리스도 교도는 물론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성스러운 도시로 여겨지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예루살렘은 기독교의 위대한 성지이다.
이슬람교에서는 교조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날개 달린 말을 타고 이곳에 날아와서 가브리엘 천사장의 안내로 바위 돔 안에 있는 성암(聖岩)에서 기도하고 승천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슬람교도들은 이 황당무계한 전설에 의해 예루살렘을 메카, 메디나 다음의 제 3성지로 삼고 있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평화의 도시’란 뜻이다. 하지만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은 지금도 갈등과 분쟁, 유혈폭력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의 역사를 보면 이곳은 평화의 달성이라는 이상을 위해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이런 역설이 집약돼 있는 땅이 바로 예루살렘이다.
1095년 우르바노 2세는 클레르몽에서 회의를 개최, 성지 탈환을 위한 십자군 파병을 제창했다. 웅변술이 뛰어났던 그는 성지 예루살렘을 잃은 기독교도들의 비참한 생활과 투르크 족의 위협을 설명하고, 이슬람의 승리는 기독교 세계의 불명예라고 열변을 토했다.
이 전쟁은 성전(聖戰)이며 전사자는 천국에 가서 그 보상을 받을 거라고 역설했다. 그 뿐만 아니라 동방엔 금은보화가 깔려 있고 아리따운 이슬람 여인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며 제후들의 욕심을 부채질했다. 교황의 웅변에 감격한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하나님이 이를 원하신다!”
1096년 제 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1099년부터 1187년까지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예루살렘에 라틴 왕국을 세우게 되자 이슬람교의 ‘바위의 돔’을 그리스도 교회로 개장하여 돔의 정상에 금의 십자가 표식을 세웠고, 그 밖에도 많은 그리스도 교회를 세웠다.
그런데 갈릴리 지방의 ‘학틴의 뿔’전쟁에서 십자군을 궤멸시킨 이슬람교도인 살라딘이 1187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살라딘은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저항을 하지 않는 한 관대하게 그리스도 교도를 가해하지 않고 또 유대인의 예루살렘 정주를 허락했다.
‘바위의 돔’의 십자가를 철거하고 십자군이 점거한 흔적이 있는 성전 구역 내의 모든 시설을 완전히 철거했다. 예루살렘은 그 후 1260년에 이집트에 점령되고 1516년 오스만 투르크에 점령되었으며, 술레이만 대제 때 현존의 성벽을 완성했다.
예루살렘 지역은 크게 동 예루살렘과 서 예루살렘으로 나뉜다. 예루살렘을 가리켜 ‘역사의 도시’라 하는 것은 동 예루살렘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동 예루살렘 성곽 안은 크게 4구역으로 나뉘어진다. 유대인 구역, 기독교도 구역, 아르메니아인 구역, 그리고 이슬람교도 구역이다.
이슬람교의 성지인 바위돔 사원(황금돔 사원)과 알아크사 모스크가 이슬람교도 구역의 중심부다. 모스크 바로 밑의 높다란 돌담이 유대인의 성지인 ‘통곡의 벽’이다.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을 선언할 당시 행정수도는 텔아비브였으나, 1950년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서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는다고 선포했다.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강경파 정치인들은 “예루살렘은 결코 분할되거나 공유될 수 없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고 주장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기회 있을 때마다 공개적으로 그런 발언을 해왔다. 그는 “통합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다. 예루살렘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우리의 것이고, 결코 나누어지거나 분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동예루살렘을 아랍어로 ‘알 쿠즈’라 부른다. 앞으로 언젠가는 세워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수도가 바로 알 쿠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되길 전혀 바라지 않는다. 많은 유대인은 “예루살렘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중심도시로 남아야 한다”는 믿음을 지녔다.
따라서 지금처럼 도시 전체가 이스라엘의 통제 아래 놓여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팔레스타인 쪽에서 동예루살렘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에게도 동예루살렘은 목숨처럼 소중한 곳이다. 역사의 도시 예루살렘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은 현재 진행형이다.
‘성지는 있을까? 없을까? 있다. ‘성지’의 뜻이 ‘종교의 발상지’ 혹은 ‘종교와 관련된 유적이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성지는 있다. 하지만 없다. ‘성지’의 뜻이 ‘성스러운 땅’이라면 성지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종교들이 후자를 믿고 싶어 하는 신화에 붙잡혀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예루살렘이란 도시는 불행하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서로 도그마화한 성지로 예루살렘을 보기 때문에 예루살렘은 늘 전쟁 중이다. 물론 자신들의 종교 발상지나 문화유적을 지키기 위한 싸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깊이 파고들어가 보면 결코 그런 싸움이 아니다. ‘거룩하고 숭고한 땅’을 지키려는 전쟁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광기에 휩싸여 있다.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예루살렘은 연구해온 사드라 드코번 에즈라히는 이렇게 말한다. “예루살렘의 은유적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 지정학적 면적은 줄어든다. 그리고 그 신성한 도시의 경계가 확장될수록 그 행정적 도시의 경계는 폐쇄적으로 변한다.” 그러니 결론은 전쟁이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서 십자군 기사 발리안은 살라흣딘에게 묻는다. “예루살렘은 무엇인가?” 살라흣딘은 대답한다. “전부이거나 아무 것도 아니거나.” 우문(愚問)에 현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