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주변에 녹지가 많으면 텔로미어(telomere)가 짧아지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생물학적 연령을 2년 이상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DNA 끝부분에 꼬리처럼 달린 반복적인 염기서열로 염색체를 손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텔로미어가 조금씩 짧아지고, 텔로미어가 너무 짧아져서 더는 분열할 수 없게 되면 세포가 죽는다.
이 때문에 텔로미어는 생물학적 연령이나 세포 노화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다. 텔로미어가 짧다는 것은 그만큼 노화가 더 진행됐다는 의미다.
영국 에든버러 대학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 캐나다 캘거리 대학 등 연구팀은 주변 녹지 공간 분포와 텔로미어 길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논문을 최근 ‘종합 환경 과학(Science of the Total Environment)’ 저널에 발표했다.
주거 환경과 세포 내 텔로미어의 길이. [자료: Science of Total Environment, 2023]
연구팀은 살아가면서 환경오염 등에 노출된 경험은 세포 내 염색체에 축적되는데, 이를 엑스포좀(ecposome, 노출 환경 인자)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엑스포좀은 노출(exposure)과 염색체(chromosome)를 합친 말로써, 환경 노출이 후성유전학적으로 염색체에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텔로미어의 길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미국 질병통제센터(CDC)의 1999~2002년 국민 건강·영양 분석 조사(NHANES)에 등록된 7827명의 자료를 활용했다. 대상자의 백혈구 텔로미어 길이(LTL)를 분석하고, 거주지 주변 녹지 분포와 대기오염도 등을 파악했다.
분석 결과, 나이를 한 살 먹을 때마다 평균적으로 텔로미어 염기서열 길이가 14.1쌍(base pair)씩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단순 계산으로 조사 지역의 평균 식생지수가 0.1 증가하면 텔로미어 염기서열이 24.4쌍(base pair) 더 길었다.
연구팀은 모델 계산을 통해 평균 식생지수가 0.1 증가하면 텔로미어 길이를 기준으로 생물학적 연령은 2.2~2.6세 낮아진다는 점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녹지 등 환경이 좋은 지역에 거주하는 데에서 오는 긍정적인 면이 나타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연구팀은 녹지 외에 이웃 박탈지수, 이웃 분리 지수, 환경오염 등의 영향을 추가로 고려했을 때 이들 요인은 스트레스로 작용, 녹지가 주는 긍정적인 요인을 상쇄한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이 있다면 녹지가 많아도 텔로미어가 줄어드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웃 박탈 지수(neighborhood deprivation index)는 소득·부·교육·학력·직업·주거조건 등을 담은 지수로, 점수가 높을수록 더 빈곤한 지역임을 나타낸다.
이웃 분리 지수(neighborhood segregation index)는 인종이나 민족 집단의 주거 분리를 나타내는 지수로, 동일한 집단은 0으로, 완전한 다양성을 가진 집단은 1로 표시된다.
연구팀은 “주거환경과 관련해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적 요인은 텔로미어 길이에 큰 영향을 미치고, 녹지 공간 노출로 얻는 유익한 영향을 압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강찬수(kang.chans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