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시니어들을 위한 프로그램 중에 ‘동요와 가곡’ 반에 참석한다. 옛날에 부르던 노래를 부르면 잊고 지내던 마음의 고향을 찾은 듯이,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감격스럽던 일, 그리운 사건들의 추억이 살아나기도 한다. 지난 주엔 옛날 노래들을 부를 때, 서울의 찬가를 모두들 힘차고 신나게 불렀다.
“종이 울리네/꽃이 피네/새들의 노래/웃는 그 얼굴/그리워라 내사랑아/내 곁을 떠나지 마오/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정다운거리 마음의 거리/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서울의 찬가를 신나게 부르는데, 갑자기 울컥하고 목이 메였다. 그 노래를 부르며 감격하여 눈물 흘렸던 기억 때문이었다. 1971년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그해 봄에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아내와 아들, 가족과 친척들은 한국에 있었다. 유학 첫해에는 미국 교수들의 영어 강의를 다 못 알아듣고, 읽어야 하는 영어 책은 쌓이고, 영어로 써야 하는 리포트는 많고, 학기말 시험은 스트레스 그 자체였다.
집에서 유학비를 가져다 쓸 형편도 아니고, 고생할 각오만 있다면 유학이 가능 하다는 말만 믿고 왔다. 잔돈푼을 벌어야 살아 가기에 남의 집 차고 청소도, 낡은 양탄자도 갈고, 마당 잔디도 깎고, 식당 접시도 닦는데, 그것도 노동허가서가 없이 불법으로 일거리를 찾아 해야 하는 나는 지치고 고달팠다.
가을 학기가 끝나고, 크리스마스 방학이 되고, 학교는 텅텅 비고, 눈은 날리고 날씨는 추웠다. 크리스마스 즈음 하루저녁 그 대학에 계시던 체육과 한국 교수님이 저녁에 그의 집으로 오라고 했다. 한인교수 한 가정과, 한인 유학생 두 명이 초청되었다. 모처럼 먹어보는 한국 음식들, 너무나 따스한 한인 교수님의 가정, 그 때 음반에서 서울의 찬가가 흘러나왔다.
“봄이 또 오고 여름이 가고/낙엽은 지고 눈보라 쳐도/변함없는 내 사랑아/내 곁을 떠나지 마오/헤어져 멀리 있다하여도/내 품에 돌아오라 그대여/아름다운 서울에서/서울에서 살으렵니다.”
그 가사는 서울을 떠나 미국에 온 나의 고달픈 상황을 노래하는 것 같았다. 그해 봄에 미국에 왔는데, 가을이 되고 인디아나의 키가 큰 자작나무 숲은 거대한 노란색으로 단풍 들더니, 가로수 단풍 잎사귀들과 더불어 찬바람에 낙엽들이 휘날려 떨어지고, 눈보라 치는 겨울이 왔다. 일년이나 떨어져 서울에 있는 내 사랑 어린 아들과 아내가 그리워지고, 가사처럼 태평양 너머 멀리 있다하여도, 서울로 돌아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유학 도중에 가족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서울의 찬가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주체할 수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화장실로 가서 얼굴을 씻었다. 거울을 보며 아무렇지도 않은 체 얼굴표정을 바꾸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인 리빙룸으로 돌아가서 아무렇지도 않는듯 어울렸다.
서울의 찬가는 1966년 불도저 서울 시장 김현옥씨가 길옥윤씨에게 진취적이고 희망 적인 서울의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서 만들어 졌다.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달성하려 새마을 만들기에 참여한 온 국민의 열성에 어울리는 긍정 적인 서울의 찬가는 패티 김의 목소리로 서울 시청 광장에는 늘 그 노래소리가 들렸고 방송국을 통해 수시로 들렸다.
고달프고 외롭던 미국생활 첫해의 크리스마스에 서울의 찬가를 들으며 눈물 흘렸던 때가 반 백 년이 넘었다. 지금, 교회에서 노인들을 위해서 하는 동요와 가곡반에서 서울의 찬가를 다시 부르니 감회가 새롭다. 경쾌한 멜로디에 맞추어 여러 사람들이 노래의 한 소절이 끝날 때 마다 짝짝짝 짝짝짝 손뼉 치면서 서울의 찬가를 부르니 고달프고 외롭던 시기를 잘 넘기고 오늘에 이른 일이 감사하다.
몇 년 전 교회에서 의사한분이 치매예방 세미나를 할 때,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쉽고 좋은 치매 예방이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노인들 중에 노래프로그램에 참여한 분들이, 그렇지 않은 분들에 비해서, 우울증이 덜하고, 병원 방문 수가 적고,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하며, 치매발생 수도 적다는 연구결과들도 많이 나왔다. 노래 부르며 살아가는 노년의 삶이 새삼 아름답고 감사하다. 서울의 찬가를 지금 다시 부르니, 가슴속에 숨었던 힘들고 슬프고 그립기만 하던 기억들이 감사의 감정으로 바뀌는 경험도 한다.